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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나는 언제쯤 유배에서 풀려나 그가 말한 ‘음악이 주는 디오니소스적인 황홀경’을 느껴볼 수 있을까.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생긴 분이었다. 눈이 크고 코가 오뚝했다. 그는 항상 짙은색 계통의 맵시 있는 양복을 입고 다녔다. 성악을 전공해서인지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다. 그는 사비를 털어 음악실의 오디오라든지 스피커, 악기들을 살 정도로 가르치는 일에 아주 열정적이었고, 음악실 밖에서는 나처럼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자상했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 시간은 너무나 괴로웠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음악실은 본관과 떨어진 2층에 있었다. 본관과 음악실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당시 나와 동급생들은 그 구름다리를 현세와 지옥을 잇는 다리인 양 여겼다.
우리는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느릿느릿 음악실로 들어갔다. 앉자마자 선생님은 쪽지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숙제 검사였다. 90점이 넘지 않은 사람은 하나를 틀릴 때마다 한 대씩이었다. 손바닥을 쭉 뻗어 가슴 높이로 올리고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선생님은 마대 자루를 천장과 직각으로 세운 후 정확히 내리쳤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음악 이론을 줄줄 꿸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음악 용어를 줄줄이 외울 뿐만 아니라 조바꿈, 조옮김까지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때론 평화로운 시간도 있었다. 우리는 음악 감상 시간만을 기다렸다. 시험을 보지 않아서 거의 맞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 자세로 눈을 감고 듣다가 졸음이라도 오면 그땐 끝장이었다. 보통 교향곡은 50분 내내 들었는데 가끔 조는 아이가 있어서 마대 자루가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선생님은 음악을, 특히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며 자신은 제자들을 그렇게 키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꼭 우리가 배우는 과목이 음악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음악 숙제는 너무 많았고 음악 수업이 있는 토요일이 되면 반 아이들이 그 전 시간부터 조용했다.
음악 선생님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쳤지만 나는 음악이 뭔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교향곡을 들으면 졸리기만 했고 가곡을 들으면 멜로디에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가사만 들렸다. 다른 아이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음악 시간에 음악을 즐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진짜 음악에 무지한 아이들로 우리를 키운 것이다. 선생님이 알면 통탄할 노릇이겠지만.
열심을 가장하여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내 모습이 보일 때, 가끔 그때의 음악 선생님과 구름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송영인<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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