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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준(TBC 제작팀장) |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냥 뛰어도 힘든 판에 20㎏ 짜리 포대 자루를 메고 달리자니 허리가 자꾸 꺾인다. 다른 지원자들은 K를 훨씬 앞질러 나갔다. 용케 안 넘어졌지만 꼴찌다. 측정 내용은 ‘폐기물 상차 및 이동 능력’. 취업난 때문인지 환경미화원 4명 모집에 20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K의 옆으로 구릿빛 얼굴의 남성이 말을 건넸다. “전에는 모래주머니를 가로 세로로 묶어서 고정됐는데 올해는 주둥이만 한 번 묶어서 모래가 좀 쏠렸죠? 이거 얕잡아봐서는 안돼요. 헬스클럽 끊어야 된다니까요, 하하.” 그도 K와 마찬가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아내가 셋째를 가져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유쾌한 그의 얼굴을 보며 K가 떠올린 캐릭터는 ‘라비’였다.
SF 애니메이션 ‘플라네테스’는 근미래 우주개발기업의 데브리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브리(debri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서의 주 업무는 우주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라 회사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우주선외활동(EVA)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다. 만년 과장 다나베, 아내를 사고로 잃은 유리, 자기 우주선을 가지고 싶은 하치마키 모두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그 중 라비는 지구에 남겨둔 7명의 자녀를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으로 나오는데 부서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어느 날 군사위성 때문에 작업선의 전원이 나가고 부원들이 위기에 처하는데 회사에서는 군사위성을 건드리지 못하게 협박한다. 건드리면 회사에서 잘리고 안 건드리면 동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라비는 마지막 용기를 낸다. “아빠는… 우주를 지키는 데브리 작업원이다!” 좀 신파 같지만 ‘플라네테스’에는 비정규직 문제, 기업의 독점, 무분별한 우주개발 등 현재의 이슈를 우주로 옮겨서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특히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통해 그 흔한 외계인이나 초능력, 광선검이 없어도 SF 걸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통 우주쓰레기는 고장 난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의 부서진 파편 등이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인데 지금은 그 양이 얼마나 될까? 미국우주감시네트워크(USSSN)에 따르면 지름 10㎝ 이상 되는 쓰레기만 해도 2만 개 이상이고 더 작은 것까지 합하면 모두 6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뭘 그렇게 작은 것까지 신경 쓰냐고? 1㎝ 짜리 볼트 하나가 초속 8㎞로 날아온다면 그건 총알이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발사체 기술을 개발 중인데 이미 지구 궤도는 우주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니. “다음은 윗몸 일으키기 시험입니다.” 매트리스에 누운 K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김영준(TBC 제작팀장)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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