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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호성<플레이스트 대표> |
종종 새로운 사람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첫인상을 좌우하고 향후의 관계를 기대하게 되는 중요한 자리이자, 서로의 정보를 탐색하는 예민한 자리이기도 한 그때, 나는 늘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망설인다.
대개 첫 대면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 짧고 간단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 '직업'이 거론된다. 직업. 사전적 의미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예술가를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연극계의 한 선배가 건넨 질문에, 마치 오래 전부터 그런 질문을 기다려왔다는 듯 한참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전에서 본 '생계'와 '계속'이라는 단어에 줄곧 마음이 무거웠던 터였다.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나 각종 설문조사에 응할 때에도, 제시된 서식의 직업란에 '예술가'는 없다. '예술가' 이 얼마나 고상한 단어인가. 허나, 직업의 테두리에 넣기엔 무언가 결이 다른 이 단어 말이다.
극단적 자본주의 구조에서 모든 것은 도구로 작동하고 또 정의된다. 인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가치창출'로 평가받는다. 그 최전선에 '경제적 가치창출'이라는 기준이 있으리라. 그렇기에 자기소개를, '생계'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경제적 생산활동과 '계속'이라는 단어에 담긴 지속성을 담보한, '직업'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속적인 경제활동'과 무관한 일은, 이 사회에서는 쉬이 소개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치를 빚어낸다는 점에서, 예술과 직업은 맞닿아 있다. 다만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 성과보다 우선된다는 점에서, 예술은 직업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경제성과 그 궤를 함께 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인정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저는 ○○○입니다"가 아닌, "저는 ○○○을 하고 있는…"로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언제부터, 머쓱하지만 나 또한 "대구에서 대본 쓰고 연출하는 전호성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한다. '대표작이 뭐예요' '한 달에 얼마 벌어요' 같은 질문엔 그저 웃으며.
2020년 새해와 함께 소중한 지면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신문에 글도 쓰는"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지면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전호성<플레이스트 대표>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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