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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대구 남구 이천동 미군부대 담벼락에 꽃수레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
기초지자체가 건립하는 공공조형물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공공조형물 건립에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 방안'을 전국 지자체에 권고사항으로 내렸지만,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이행률을 점검한 결과 39.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구 8개 구·군은 모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달서구와 서구는 지자체가 건립 주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형물 심의위원회 심의 없이 조형물을 건립한 사례가 적발됐다. 수성구는 관련 규정조차 없다는 지적을 받아 현재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 공공조형물로 곳곳에서 잡음
주민 공감대 형성과 면밀한 검토 없이 세운 조형물들로 전국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남 순천에 세워진 '죽도봉 사자상'과 세종시 대로변에 '흥겨운 우리 가락' 금속 동상은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철거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북 포항시 포항공항 진입로에 자리하고 있던 '은빛 풍어'는 설치 10년만인 지난해 철거되기도 했다. 제작 당시 3억여 원의 예산이 소요됐으나 철거를 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고철값인 약 1천400만원에 거래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구의 경우 지금은 숙졌지만 달서구 선사시대 상징물이 논란이 됐다. 달서구청은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선사시대를 상징하는 각종 벽화와 안내판, 석상 등을 세웠다. 도심 한가운데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를 활용해 이색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관련 조형물들이 '흉물'이라며 철거를 요청했다. 주민 3천여 명이 철거를 요구하는 뜻의 서명을 모아 구청에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상권 활성화 목적으로 상징조형물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상인들이 반대하고 나선 일도 있었다. 골목경제권 조성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중구 종로의 사업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중구청은 조형물 건립 예산을 2억8천만원으로 잡았지만, 정작 상인회가 관련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 종로맛집상가번영회 관계자는 "조형물 관련 예산이 너무 많아 삭감해 다른 부문에 보태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받아들여져 현재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 유명무실한 공공조형물 조례
대구시와 각 구·군은 조례를 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대구시는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된 '대구시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조형물 건립을 추진하려면 전문가 15명 내외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역사적 자료, 고증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공감도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민간이 주체로 세우는 조형물만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조형물을 세우면 대구시의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각 기초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관련 조례를 신설하고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겠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미흡한 수준이다. 5일 대구 8개 구·군에 따르면 6개 지자체에 공공조형물 설립을 규제하는 조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심의위원회 운영을 하지 않거나, 일부는 위원회 구성도 완료하지 않은 상태다.
도시재생과 관광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중구의 경우, 조형물 관련 지출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위원회를 딱 한 차례만 소집했다. 중구의회 이경숙 의원은 "조례를 만든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조형물을 만들었다. 조형물을 마구잡이로 세우고 있다는 내용의 구정 질의를 하자 뒤늦게 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상위법이 시 조례인데, 기초지자체에 맞는 내용이 없어 다소 혼란이 있었다. 지역 정체성, 주민들의 공감도를 고려해 조형물을 세우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행정학과)는 "적합성을 따져 조형물을 세우면, 그 장소에 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처럼 타당한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조형물을 세운다면 시민들은 조형물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다. 심의를 의무화하는 기준을 확립하고, 전문가들과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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