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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호 〈상화기념관 이장가문화관장〉 |
달성토성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달구벌은 신라만의 도시로 생각되곤 한다. 하지만 대구의 이곳저곳에 고려태조 왕건의 발자취가 가득하다.
후삼국시대 견훤이 서라벌을 공격할 때 왕건은 5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대구로 왔다. 동화천을 지나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연경(硏經). 이어 공산(公山)을 배경으로 격전을 벌인다. 이 격전이 동수대전, 즉 동화사(桐華寺) 대전이었다. 왕건 군대는 패퇴를 거듭하다가 파군(破軍)재에서 군대가 부서지고 만다. 이때 신숭겸의 지묘(智妙)로 왕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그를 비롯한 충신 8명이 모두 전사해 공산은 후에 팔(八)공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망가던 중 잠시 몸을 숨긴 산봉우리가 둔지(遁趾). 들판에 반달이 떠서(半夜月). 그제야 안도할 수 있어서 안심(安心) 등 왕건 관련 지명이 숱하게 있다.
이후 왕건은 앞산 지역으로 향하게 되는데, 잠시 몸을 숨긴 곳이 은적사(隱跡寺)와 안일사(安逸寺)다. 안일사에서 적에 쫓겨 도망간 굴이 왕굴. 왕굴을 지나 적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임시로 머문 절이 임휴사(臨休寺)다. 왕건은 임휴사에서 견훤군의 수색으로부터 안전해지자 지금의 사문진 나루터 혹은 성서 쪽으로 해서 성주로 탈출했다. 이때 달성군 다사 고개에 잠시 쉬었다 간 곳이 왕선령 또는 왕쉰(선)재다.
위 스토리의 많은 부분이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졌다. 동수대전은 역사적으로 기록돼 있지만 여러 역사서에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것도 있고 1천년도 넘는 것이니 실상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대구가 역사의 조경 수역 같이 얽히고 설킨 스토리가 많은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과 사실 사이를 메울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한데, 다행히 달서구를 중심으로 왕건 흔적 찾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대구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거나, 대구에 많고 다른 곳에는 적은, 말하자면 경쟁력이 있는 콘텐츠인 왕건의 패퇴 스토리가 대구가 가진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겨울이 돼 나뭇잎이 떨어지니 낙동강 사문진 나루터에서 임휴사가 보인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변(川邊)을 이용하거나, 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산기슭의 외곽을 이용해 이동하는 왕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니 꼭 한번 앞산이나 팔공산에 올라가 보도록 하자.
이원호 〈상화기념관 이장가문화관장〉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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