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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진〈미술평론가〉 |
며칠 후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 새해를 표시하는 일은 달력의 일. 실상은 '영원한 현재성'만 찰나에 있을 뿐이다. 찰나의 시간개념도 과학이나 철학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철학에서는 0.1초의 마이너스 24승을 일컬으니 0.000...1초로 소수점 이하 동그라미 스물네 개가 찍힌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실은 이 시간도 너무 길다. 화엄경을 축약한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서는 "구세십세호상(九世十世互相)"이라 하여 과거의 과거세, 과거의 현재세, 과거의 미래세, 현재의 과거세, 현재의 현재세, 현재의 미래세, 미래의 과거세, 미래의 현재세, 미래의 미래세로서 9세가 모두 10세라는 영원한 현재성으로 수렴된다.
어릴 적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면서 언젠가 그 배는 강물 따라 바다에 닿으리라 믿었었다. 그 유년의 추억은 너무도 생생한데, 지금 비로소 확연히 깨닫는다. 과거의 그 강물이 흘러 바다까지 가지도 않았고, 과거의 시간이 흘러서 지금에 닿은 것도 아니며, 과거의 그 어린아이가 지금까지 흘러와 늙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만 과거 찰나의 강물과 찰나의 어린아이가 있고, 또 지금 찰나의 할머니로 손주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사람도 사물도 시간도 공간도 모든 현상계의 찰나가 새롭게 빛나며 일회적인 지족(至足)의 순간으로 느껴진다.
이 같은 관상의 여지를 열어준 것은 중국의 후진시대 구마라집의 문하에서 공부한 승조대사의 '조론(肇論)' 중 현상론인 '물불천론' 논문이다. 본질론과 인식론에 앞서 우리에게 현상하는 세계의 실상을 설파한 이 글은 불교와 동양철학의 핵심을 가장 간명하게 요약하여 불이(不二)와 진여성공(眞如性空)의 경계를 증득하게 한다. 불가에서는 팔만사천의 법문이 모두 하나의 법문으로 수렴되는데, 당시의 위진현학과 함께 여러 불경의 핵심을 간파한 이 글은 현대에도 깊은 가르침을 전한다. 법성이 그러한데 시정의 뭇법들은 인간욕망의 그물로 소음들만 일으키고 있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그물도 놓을 수가 없는 격이다. 알고 보면 소음과 적막함이, 헌 것과 새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찰나와 모든 날이, 또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늘 공성(空性)의 날것으로 있을 뿐이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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