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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욱한 감각

20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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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늦은 아침으로 수제 초코파이를 차린다. 먼저 파이를 한 입 먹은 아들 왈, 부드러운 케이크 같단다. 색다른 맛이니 얼른 먹어보란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커피만 한잔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지못해 한 조각을 집어 든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다. 부드러운 식감은커녕 설탕 묻힌 흙덩어리를 씹는 것처럼 퍽퍽하다. 이럴 줄 알았다. 비염 때문이다. 겨울이면 증상은 더 심해져, 잊혀가는 전설처럼 냄새는 코끝 저만치 달아나 있다. 냄새를 잘 맡을 수 없으면 미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표가 다른 콜라나 초코파이 맛을 쉽게 구분한다. 하지만 오래 비염을 앓아 후신경이 무뎌진 나는 세상의 모든 콜라는 한 가지 맛이요, 모든 초코파이 또한 한 맛으로 느껴진다. 아주 가끔 컨디션이 좋아 냄새를 맡을 때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코가 뚫린 그 순간만은 커피향이든 빵 굽는 냄새든 좋은 냄새에 집착하게 된다. 이때도 이미 무뎌진 혀라서 미각만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후각은 미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 끈질긴 체험 때문에 두려울 때가 있다. 우선 향을 못 맡으면 무기력하거나 예민해진다. 오작동 된 몸은 마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콜라 맛으로 다시 가보자. 세상 콜라 맛이 다 다르고, 시중 수제 초코파이 맛이 다 다른데 그 맛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나는 다 같은 맛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 아무리 다른 맛, 다른 느낌이라고 누가 설명해줘도 내가 체험한 선에서는 같은 맛이니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옳은 상대에게 억지 구분을 하는 것이라며 내 편협한 속내를 비칠지도 모른다. 나아가 세상 사소한 기쁨이나 슬픔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채, 반응 속도가 느려지거나 무감각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인다. 몸의 미감이 영혼의 미감을 잠식해 연민도 모르고 자제도 잊은 채 스스로를 삿되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런 낭패감을 맛보지 않으려면 어째야 하나. 달아나는 후신경도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의 하나로 담담히 받아들일 일이다. 붙잡으려 하지 말고 그저 코가 뚫릴 때 냄새 맡고, 혀가 살아날 때 맛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거다. 대신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미욱한 감각이 스스로의 친구라는 사실. 부족한 그 감각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되새김으로써 일상의 경고등으로 삼아 보는 것이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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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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