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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경〈아동문학가〉 |
일주일에 한두 번 고향에 간다. 마을 초입에 다다르면 '한개마을'이라는 표지석 뒤로 가지를 넓게 드리운 왕버들나무가 보인다. 마중 나온 엄마를 만난 듯 반갑고 푸근하다. 우리가 "고목나무"라 부르던 이 고목은 여기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이야깃거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고향의 상징 같은 나무다.
왕버들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400년을 살았다. 10여 년 전, 보호수로 지정되어 주변이 정비되고, 지정번호가 새겨진 안내판을 거느리게 되었다. 수령 400년, 수고 15m, 둘레 670㎝, 이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안내문은 나무의 지난 내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나무는 그 자체로 자신을 보여줄 뿐이다. 보호수가 된 후 왕버들나무는 지금까지 지녔던 당당함과 온화한 힘을 잃어버렸다. 그건 물론 내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 낸 나무의 내밀한 힘은 어떤 언어와 문자보다 강하고 단단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 위로와 치유를 주었다.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왕버들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풍경을 보거나 공상하는 걸 좋아했다. 엄마에게 혼이 난 날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운 날도 늘어진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한참을 있으면 애쓰지 않아도 스르르 마음이 풀어졌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도 태어나기 전인 옛날 옛날에 왕버들나무는 번개를 맞아 불에 타버렸다. 반쪽만 겨우 살아 속이 텅 빈 나무는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고 오랜 세월 다시 무성해졌다. 마을 아이들은 그을음이 가득한 나무의 텅 빈 속을 보고 자랐다. 불타고 속이 비어도 살아 무성해지는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며 힘든 세월을 지나왔다. 무슨 염원이나 소원 같은 거 들어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위안을 주는 힘이 있어 왕버들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이었다. 이후 보호수 표지석을 세우고 나무의 텅 빈 곳을 콘크리트로 채우고 덧발랐다.
보호의 방향과 목적은 오직 '오래 살려두기' 일 뿐이라는 듯 박제된 전시물처럼 생기가 사라진 나무를 볼 때마다 내 가슴도 답답해진다. 모든 자연은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죽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으면 한다. 나무에도 각자 주어진 시간이 있을 것이다. 치료하고 연명하는 것이 나무를 위한 것인지를 나는 모르겠다. 당당하고 존엄한 한 나무의 삶,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면 좋겠다.
이윤경〈아동문학가〉
이윤경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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