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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아이와 함께 유치원 앞 산책길을 걸었다.
매일 저녁마다 홀로 유치원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는 나를 보더니 신이 났다.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알에서 나온 혁거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저만치 앞서가던 아이가 문득 멈춰 선다.
"엄마, 해골물이 뭐야?" "원효라는 사람이 공부하러 먼 길을 떠나다 밤이 되어 동굴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대. 근데 한밤중에 목이 말라 손을 더듬더듬 해보니 물바가지가 있더래. 그래서 그 물을 마시곤 '아, 시원하고 달다' 하고 잠이 들었대. 근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건 물바가지가 아니라 해골바가지였던 거지. 그 사실을 알자마자 마셨던 물을 다 토했대. 그러면서 '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하고 깨달았대" "으…, 엄마 앞으로 그 노래에서 해골물은 빼주면 안 될까? 왠지 무섭네" 하곤 엄마 손을 꼭 잡는다. 빙그레 아이 손을 잡고 해골물 빠진 노래를 부르며 걷다 생각에 잠겼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그래,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
나는 늘 불평불만이 가득해 힘든 일이 있으면 내색 안하곤 못 배기는 성미다. 그런 내가 내뱉는 말도 불평불만 일색이다. 소품이 많으면 많다 투덜투덜, 쉼 없이 몰아치는 일정이 빠듯하다 투덜투덜, 이거 하면 이거 한다 투덜, 저거 하면 저거 한다 투덜. 모든 일이 즐겁지 않고 힘겹기만 했다. 하기 싫은 일을 누가 억지로 떠넘긴 것처럼. 사실 그 모든 것은 내가 선택했음에도 말이다.
지난 5월은 그 어느 때보다 일정이 빽빽했다. 하루 일정을 3시간 단위로 쪼개 빼곡히 채워 넣어야했다. 주간 계획표가 알록달록해졌다. 그러다 보니 체력도 부족해지고 혼자 유치원에 남아 있을 아이 모습도 아른거려 맘 한 쪽이 불편했다. 언제나처럼 대상 없는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에 나의 선택은 달랐다. 불만이 터져 나올 듯했지만 입을 닫았다. 한 번이라도 볼멘소리를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짝 정신을 차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나중에는 빠듯한 일정 속에 가족과 저녁을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했다. 하는 일들에 비해 마음이 가벼웠다. 달력을 넘겨 6월 일정을 확인해 본다. 5월로 끝인 줄 알았던 정신없는 일정은 7월까지 이어진다. 다시 한번 꿀꺽 마음을 먹어본다.
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정선현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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