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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함께 연구하는 즐거움

2021-07-26

김서울
김서울〈화가〉

오롯이 자신만으로, 자기만의 세계로 충만해진 상태에서 작품 제작을 해야 하는 창작자에게 있어서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셰프의 주방이 신성하여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진대 하물며 작가의 작업장이 다를까.

그러나 공동작업장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판화작가들이다. 판화는 몇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각종 프레스 기계와 동판화 제작에 필수인 부식액과 같은 위험한 화학약품, 그리고 그것을 다룰 때 필요한 설비 등 많은 장비와 넓은 공간, 갖가지 시설과 재료를 필요로 한다. 가난한 작가들로서는 한 개인이 판화에 필요한 제반의 준비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더욱이 독점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작가들이 판화작업을 하고 싶을 때는 판화의 환경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공동작업장, 즉 판화공방(Printmaking workshop)을 찾는다. 작품을 구상하고 공방을 방문하여 이용료를 지불한 후 준비된 장비와 재료를 사용하여 실 제작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판화의 재미있는 특성이 생겨나는데, 바로 함께 기법을 연구하고 지식을 활발히 나누는 문화다. 또한 판(版)이라는 물질적 매개를 한 번 거쳐야만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간접성과 이에 따른 필연적 우연성이라는 판화의 특성이자 가장 큰 매력이 더해진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판의 물성을 극복하거나 또는 이를 충분히 끌어내기 위한 많은 연구를 거듭하게 된다.

판화공방에서는 누군가가 작품제작이 난관에 부딪혀 해결 방안에 골몰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몰려들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고 실험하곤 한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토론하는 건 쉽지 않음에도 그런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만난 미국의 한 작가는 자신이 판화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가 '판화의 네트워킹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함께 연구하고 교류하며 그 결과를 나누는 즐거움은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예술가에게도 있다. 서로의 능력과 연구 성과를 존중하는 태도가 바탕이 된다면 더욱 장려해야 한다. 사람 간 유대관계가 약해져 가는 요즘, 다양한 공동작업장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이를 통해 누구나 장벽 없이 창작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고, 협동과 교류의 문화가 일상에 널리 퍼지기를 희망해 본다.
김서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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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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