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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행정을 압도하는 정치, 정치를 대신하는 法治(법치)

2021-08-18

[영남시론] 행정을 압도하는 정치, 정치를 대신하는 法治(법치)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 시작되고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의 삶이 다시 어려워지자 정부와 여당은 또다시 5차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전 국민 보편지원'이 필요하다는 여당과 '소득 하위 80% 지급'을 주장하는 정부가 충돌했다. 이처럼 보편지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권과 재정 건전성 및 피해계층에 대한 선별지원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정부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행위에 대해 매표정치, 재정의 정치화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를 견제할 행정의 수단은 찾기 어렵다.

내년 3월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대선 후보자의 절대다수가 법률가이거나 법학도 출신이다. 현재 여야 모두 여론조사 1위도 법률가다. 범위를 넓혀보면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법조인 출신은 46명으로 15.3%에 달한다. 왜 이렇게 항상 정치와 행정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정치는 법률가가 다수가 되는 것일까.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활동이고, 정치가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해 국가·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을 한다. 대표적인 정치가는 대통령·국회의원 등 선거에 의해 취임하는 공직자들이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권력 획득, 유지를 위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법률은 강제력이 있는 사회 규범이고, 법률가는 법을 해석·집행·판단하는 일을 한다. 이들에게는 법치와 정의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행정은 정책과 법을 집행하는 일이고, 행정가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공익성과 합리성이다.

정치가 행정을 압도하게 된 것은 경제성장에 따라 복잡다기한 이해세력 간의 충돌과 갈등을 조정할 정치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점과 정치권이 5년이라는 단기간 내에 실적을 내기 위해 행정을 대규모로 동원하게 된 점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도 군부정권에 대해 행정의 예속성이 강했지만, 당시에는 행정관료의 전문성과 합리성이 존중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가 단기적 성과를 위해 행정을 압박하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법률가들은 경제개발 시대에도 육사와 법대 출신이 주류라는 소위 '육법당(陸法黨)'이라는 조어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시절에 법치와 공정이라는 가치는 다분히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오히려 정치와 행정의 수단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대선을 앞둔 이 시기에 법률가의 득세는 정치의 사법화(司法化)에 따라 정치에 있어 법적 논리와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성이 커진 측면과 공정과 법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그렇다고 과연 법치가 정치를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정치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 상호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술로 창조성과 포용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고, 법치주의는 민주정치의 근거와 한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치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인 원리라면 법치는 과거지향적이고 소극적인 원리다. 이런 이유로 정치와 법치 모두 중요하지만, 법치가 정치를 대신하거나 정치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 대선으로 집권하는 새로운 정치는 조금 더 행정을 존중하고, 법치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정치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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