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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조각'에 대한 단상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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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변호사〉

얼굴은 미라같이 비쩍 말라 눈만 도드라지게 보이고, 팔과 다리 몸통까지 완전히 말라붙어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큰 조각상 하나가 깜깜한 전시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선 채로 바라보는 사람, 바닥에 앉아 턱을 들어 올린 채 넋을 놓고 쳐다보는 사람, 모두들 숨죽이고 중앙을 응시하는 가운데 나는 그 조각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생각을 했다.

'조각'이라는 단어는 법조인인 나에게는 '위법성조각사유'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유라는 의미인데,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법전에만 남아있는 일본식 한자다. 대표적인 위법성조각사유는 정당방위인데, 정당방위에 해당하면 무죄가, 해당하지 않으면 유죄가 되는 것이라 고시생 시절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판례를 외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이 정당방위의 요건을 이상하리만치 엄격하게 해석한다. 오랜 시간 피해를 입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며 행한 상해행위, 살해행위에 대하여 단 한 건도 정당방위의 성립, 즉 위법성조각사유가 존재함을 인정한 적이 없다.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위법성이 조각되었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일련의 주장들이 20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미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몇 년 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에서 몸이 앙상하게 마른 조각상들을 보며, 처음에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각을 만든 조각가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예술은, 조각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은 그 전시로 인해 깨어졌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을 지켜보았을 자코메티가, 실존에 집중하며 모든 장식의 요소들을 배제한 채 아름답지 않은 앙상한 사람의 조각상을 만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제야 조각상에 집중이 되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걷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대표작품에 자코메티가 한 코멘트는 그래서 너무 감동이었다. 가눌 길 없는 고독함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걷는 그 모습에서, 나를, 또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보았다.

그렇게 어떤 조각은 아름답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어떤 조각은 피해자를 범죄자로 내몰며 고통을 준다.
이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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