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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지민 (책으로 노는 사람들 회원) |
지난봄부터 사적인 모임을 자제하는 대신 거리두기가 비교적 잘되는 연극, 뮤지컬 공연장을 혼자 다녔다. 그런데 무대에서 대사로 쏟아지는 욕을 많이 들어야 했다. 부조리의 벙커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교도소를 배경으로 연주자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뮤지컬, 신화 속 주인공이 지상에서 내려와 인간 세상을 들여다보는 연극 등에서다. 젊은이의 분노, 좌절 등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도 어김없이 대사에 욕설이 섞여 있었다. 그 속에는 '5포시대' 희생양인 젊은이들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가 반영되어 있다.
배우들은 심각한 현실을 욕으로 표현하면서 관객에게 전달했고 관객으로서 나는 충분히 그 절박함에 공감했다. 기성세대로서 반성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 사회의 민낯을 마주한 것처럼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세월호 등 많은 인재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 비정규직, 택배 노동자의 희생과 불평등, 갑질 논란, 취업, 결혼, 아이, 주택 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청년 문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은 연극에서처럼 분명 욕 권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대명공연거리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3회 실험극 페스티벌 중 한 작품인 '두 병사 이야기'를 관람했다. 이 연극에는 햄릿의 아버지와 숙부 사이의 암살을 목격한 두 병사가 등장한다. 두 병사는 그들이 알고 있는 비밀을 '지린 똥'이라는 암호로 명명했다. 극 중 배우가 그 암호를 말할 때마다 햄릿의 고민, 왕실의 암투 등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낼 수 있었다. 그 암호는 길게 설명하거나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부조리하고 비밀스러운 사연이 강력한 공유와 공감의 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이 연극을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과 비난, 심지어 욕설도 상징이나 은유 등 다른 예술적 표현법을 통해서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해 리얼리즘을 가장한 욕설과 폭력에 너무 길들어져 있었던 건 아닌지, 또 현실에서 우리는 그것을 모방하며 사는 건 아닌지 되물어 본다. 우리는 연극을 비롯한 모든 예술에서 상상력을 얻기도 하고 교감하고, 위로받기도 하고 생각의 여백과 생활의 여유, 재미와 활력을 선물 받는다. 창작자의 개성과 상상력, 은유, 비유, 상징, 함축, 풍자, 해학 등 다양한 예술적 형식이 승화되고 발효된 희망과 대안의 예술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남지민 (책으로 노는 사람들 회원)
남지민 책으로 노는 사람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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