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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우미〈생명평화아시아이사〉 |
"돼지기름처럼 끈적끈적하고 비계처럼 미끄덩미끄덩한 것이었습니다. 살가죽에 달라붙은 그 비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고(故) 김근태 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들었던 많은 비명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고문으로 한 인간을 무너뜨리고, 고문기술자들이 원하는 행적의 인간으로 재건축하는, 이른바 '공사'를 관객들이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 영화다. 영화는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고문의 추억을 소환하는 이유는 지난 4일 서울 도봉산 입구에 김근태 기념 도서관이 완공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진행 중인 5·18민주화운동 국가폭력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 보상 소송의 원고인 피해자 한 분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는 40여 년이 지났건만 진술서를 앞에 두고 일주일째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불시에 체포영장도 없이 강제연행되어 불법으로 구금당한 후 무차별적으로 당해야 했던 집단구타, 합수단원으로부터 볼펜으로 손등을 구멍이 나도록 수없이 내려 찍힐 때 솟구치던 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잔인한 것은 후배를 고정간첩으로 불라며 고문하고 회유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후배를 억울한 간첩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영혼은 육체보다 더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는 그로부터 고문 후유증으로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알 수 없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홀로 안고 견뎌야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를 추스려야 했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고통을 감내했던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꽃잎' '택시운전사' 등 5·18의 비극을 다룬 영화들은 우리에게 망각의 역사를 다시 불러내어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잊힌 역사 속에서 치유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아직도 매일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고통은 외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면과 공감, 애도의 과정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직면하고 함께 치유해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진정한 치유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제대로 책임지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
차우미 생명평화아시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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