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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화빈〈작가〉 |
평소 집필을 하거나 기고를 할 때 종이에 먼저 글을 쓴 뒤 컴퓨터에 옮긴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두 배나 걸리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종이에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글과 관련된 기억들이 회상되는데, 그때 잠시 멈춰 사색에 빠지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 시간으로 인해 바쁜 일상 속 잊고 지낸 지난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마음의 여백을 채워나가기도 한다.
나는 일상에서 멈춤이 필요할 때면 종종 일기와 편지를 쓴다. 종이에 연필을 맞대고 하루 일과를 적어나가다 보면 평범했던 하루에 의미가 생기고, 편지를 쓰다 보면 사람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 생겨난다. 잘 쓴 글에 대해 질문한다면 내면을 통해 구체화하는 글이라 하겠다.
최근 시간적인 이유로 종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컴퓨터에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이 단축되어 보다 여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됐지만, 글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글에도 감정을 실은 자연적인 느낌과 감정을 뺀 인공적인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짧은 한 줄의 문장에도 감정은 녹아있다. 퇴고할 때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글 쓰는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현대인은 글 쓸 일이 많다. e메일, 보고서, 공문 등 일과 관련된 글을 매일같이 쓰지만, 형식적인 틀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쓰이기에 업무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부분 일반적으로 인지하는 '글쓰기'와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비중을 두고 글이 아닌 작업으로 치중한다. 그러나 업무 목적을 띤 글이라도 책임을 담아 쓴다면 '무형의 가치'에서 '유형의 가치'로 변환된다. 어떤 글이든 의미가 내재해 있어야만 가치가 생겨난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 탓에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신속함이 강조된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느림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종이에 끄적이며 써 내려가는 한 줄이 '느림의 여유'를 만들어줄 것이다. 글의 종류와 상관없이 끄적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의미를 생성해내고,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쓰인 글이 아날로그적 가치를 담은 기록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구화빈〈작가〉
구화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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