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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외규장각 의궤와 故 박병선 박사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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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달 연간 전시계획 발표에서 오는 11월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을 연다고 밝혔다. 2011년 프랑스에서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 형식'으로 가져온 의궤 297권을 모두 선보이며 의궤에 기록된 각종 기물과 복식, 재현품을 함께 전시한다는 것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 별관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처음 발견한 고(故) 박병선 박사와 그의 마지막 연구를 함께했던 필자는 외규장각 의궤 전량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큰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있다.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받은 박병선 박사는 필자가 프랑스 유학 시절 뵙게 된 분이었다. 어느 날 별다른 생각 없이 신문을 뒤적거리던 필자는 박병선이라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의 인터뷰 글을 보게 됐는데, 인터뷰 말미 '진취적인 젊은이들의 자원봉사가 절실합니다'라는 박사님의 마지막 멘트에 무작정 박사님을 찾아갔다. 나는 아직 한창 젊은 나이니까 e메일, 복사, 자료 수집 등 뭐든지 박사님보다는 조금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박사님과의 인연은 오랫동안 미술에만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내 나라의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귀한 깨우침을 주었다.

나는 박사님의 병인양요 관련 두 번째 저서를 함께 준비하며 파리 근교 방센느의 고문서실을 일주일에 2~3번씩 방문했다. 그곳에서 1866년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범했던 당시 로즈 제독이 친필로 쓴 보고서 원본을 열람하며 필요한 내용을 손으로 필사했고,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는 주변의 프랑스인에게 물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도대체 하라는 미술 공부는 뒷전이고 왜 박병선 박사에게 매달려서 저렇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종종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아무 대가없이 박사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마냥 좋았고,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 가슴 벅참을 느꼈다.

2011년 11월 두 번째 암이 전이됐던 박사님은 결국 파리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대부분 의식이 없었던 박사님은 가끔 깨어날 때면 "책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이 모습을 보던 의사들은 "이렇게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희박한데 정말 이분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박사님 타계 이후 한국 정부는 즉시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 빈소를 마련해 주었고, 단 한 번도 개인의 장례식을 위해 개방한 적 없었던 파리외방전교회는 영결식을 열어 주었다. 박사님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돼 계신다. 10년 전 박사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를 제대로 마주할 시간을 천천히 기다려본다.
마동은〈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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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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