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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봄날의 울산 정자항…등대가 된 귀신고래, 2천만년 전 '꽃바위'…'봄마중은 동해로'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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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정자항에 세워진 고래등대가 비상하듯 서 있다. 정자 앞바다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회유하던 곳이었지만 1970년대 이후 사라진 후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다.

매화가 피어나고 벚꽃이 피어나는 이른 봄날이면 저 바다에 고래가 나타났다. 고래는 가만히 바닷속을 헤엄치다 문득 몸을 세워 하늘을 바라보았고 때로는 비상하여 회색빛의 어마어마한 몸으로 하늘을 휘저었다. 1911년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인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앤드류스 박사는 울산 앞바다에서 그 거대한 고래를 목격하고는 소리쳤다. "아! 귀신이다 귀신!" 이듬해인 1912년에도 그는 저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고 세계 최초로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ey Whale)'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옛날이야기다. 그러나 귀신고래는 1970년대 이후 귀신같이 사라졌고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다.

동해 오가던 귀신고래 자취 감춰
2010년 등대로 부활 '깜빡 깜빡'
남방파제 인근 바위 '박윤웅돌'
어사 박문수와 얽힌 얘기 전해져
강동해안엔 200m 주상절리 장관


◆귀신고래가 회유했던 '정자항'

저기에 귀신고래가 있다. 빨갛고 하얀 귀신고래다. 귀신고래는 울산의 정자항 방파에 끝에 수직으로 몸을 세우고 등대가 되었다.

정자항은 울산 북구 정자동에 위치한다. 220여 년 전 마을 가운데 24그루의 포구나무 정자가 있어 정자(亭子)라 했다고 한다. 행정동은 강동동으로 정자동, 구유동, 당사동, 어물동 등 9개의 법정동을 관할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항구가 정자항이다.

정자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고래등대는 2010년 12월에 설치했다. 남 방파제의 하얀 고래등대는 좌현 표지의 녹색 불빛을, 북방파제의 붉은 고래등대는 우현 표지의 붉은색 불빛을 발산한다. 등대의 불빛은 매일 밤 6초마다 연속으로 2번씩 깜빡인다. 빛이 닿는 거리는 자그마치 11㎞나 된다. 고래등대는 난바다를 내다보며 고래를 기다리는 듯, 먼 바다로 빛을 비추어 고래를 부르는 듯, 그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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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항 북쪽으로 정자해수욕장이 길게 뻗어 나간다.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도 더러 있지만 콩알만 한 크기에서 주먹만 한 크기까지의 까만 몽돌이 대부분이다.

정자 앞바다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회유하던 곳이었다. 귀신고래는 암초에 붙은 미역을 따 먹기 위해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 자주 등장했다. 그리곤 머리를 세우고 있다가 귀신같이 사라졌다. 귀신같이 나타나고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귀신고래라 했다. 귀신고래는 11·12월경 울산 앞바다를 지나 남해·서해 및 동중국해에서 번식을 하고 3·4월이면 다시 울산 앞바다를 지나 북상해 먹이가 풍부한 오호츠크 연안에서 여름을 보냈다. 봄인데 고래는 없다. 1977년 1월 귀신고래는 울산에서 관측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귀신고래가 오가는 회유해면(回遊海面)은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귀신고래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에는 참으로 귀하다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돌아오라는 기원이고 또 돌아올 때까지 너의 바다를 지키고 있겠다는 약속이다.

정자항 북방파제는 430m, 남방파제는 250m로 꽤 큰 규모다. 방파제 초입에서 중간 지점까지는 수심이 얕고 수중여(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란장 및 치어들의 피신처가 된다. 중간에서 등대가 있는 끝 부근까지는 다소 수심이 깊어 대물을 기대하는 낚시꾼들의 망부석을 종종 볼 수 있다.

외측의 파도를 막아주는 파제제는 2004년에 축조되었다. 작은 섬처럼 보이지만 120m 규모다. 남방파제와 파제제 인근에는 바위가 많다. 그중에 '양반돌' 혹은 '박윤웅돌'이라 불리는 12구의 곽암(藿巖), 즉 미역바위가 있다.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당시 이 지역의 토호였던 울산박씨 시조 박윤웅(朴允雄)에게 하사한 바위다. 바위의 소유는 곧 미역 채취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바위를 나라에 환수시켰더니 이후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박문수는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에 '윤웅(允雄)'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데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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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물량장에 가지런히 누운 가자미가 뽀얗게 말라가고 있다. 가자미는 정자항의 주력 상품으로 전국 유통 참가자미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어획된다.

바다를 내려다본다. 얕은 물속에 초록 풀 두른 바위들이 어른거린다. 무엇이 '양반돌'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가 곽암이다. 귀신고래는 곽암의 미역을 맛보았을까. 이곳의 돌미역은 지금도 유명하다.

항구를 둘러싼 횟집거리에는 대게집이 흔하다. 정자 바다의 주요 어종은 문어와 가자미·대각미역 등이지만 최근에는 수온 변화로 울진과 영덕의 중심 어종인 대게가 정자 앞바다에서 잡히고 있다. 11월 초부터 5월 말까지가 대게 잡이 철인데 12월 하순부터 3월 말까지 잡히는 대게를 최고로 친다. 살이 무른 북한산과 중국산도 들어온다니 등딱지를 잘 살펴야 한다. 검거나 흰 반점이 없고 껍데기가 얇아야 살이 쫄깃하게 씹히는 정자대게다. 가자미는 여전히 정자항의 주력 상품이다. 전국 유통 참가자미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어획된다. 항구 물량장에 가지런히 누운 가자미가 뽀얗게 말라가고 있다.

◆강동해안으로 불리는 '정자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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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해수욕장 해변의 북쪽 끝에 '강동 화암 주상절리'가 꽃처럼 피어있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약 2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동해안 주상절리 가운데 용암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자항 북쪽으로 정자해수욕장이 길게 뻗어 나간다. 보통 강동해안이라 불린다. 해변의 너비는 좁은 편이고 길이는 1㎞가 넘는다.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도 더러 있지만 콩알만 한 크기에서 주먹만 한 크기까지의 까만 몽돌이 대부분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확연한 몽돌이다. 자그르르 자그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 듣는다. 바다에 씻기도 또 씻기어 반드르르해진 돌들이 꼭 제 모습과 같은 소리를 낸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빼곡한 은빛 아파트 숲은 산하동 도시개발구역이다.

해변의 북쪽 끝에는 '꽃 바위'라 불리는 '화암(花岩)'이 피어있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다. 약 2천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화산활동의 작품으로 바위의 단면이 꽃처럼 보여 화암이라 명명되었다. 주상절리는 육각형 내지 삼각형 기둥 모양의 바위가 겹쳐져 있는 특이 지질의 하나로 현무암질의 용암이 서서히 식으면서 생성된 냉각 절리다. 언뜻 나대지에 오래 쌓아 놓은 목재더미처럼 보이는데 횡단면이 대부분 육각형과 삼각형 모양으로 꽃처럼 펼쳐져 있고 수평 방향으로 누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무암질 용암이 평평한 지표면을 따라 수평으로 흐른 것이 아니라 절벽을 따라서 용트림을 하면서 느린 속도로 흘렀음을 짐작하게 한다. 화암은 해안을 따라 200m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해안에서 150m쯤 떨어진 해빈 끝 소나무가 서 있는 암괴에도 절리 현상이 보인다. 화암은 동해안 주상절리 가운데 용암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겨울이 지나고 꽃 소식이 들려올 즈음이면 늘상 고래가 떠오른다. 그도 매년 동해의 꽃을 보았을 텐데….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번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언양분기점에서 16번 울산고속도로를 타고 울산IC에서 내린다. 울산공항 방향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상방사거리에서 31번 국도로 직진한다. 무룡 터널을 통과해 약 3㎞를 가다 오른쪽 정자항 가는 길로 빠져나가 직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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