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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광훈〈소설가〉 |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렇듯 철학이라는 것은 관념과 의식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정신을, 과학이라는 것은 물질과 자연현상에 대해 쉼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지식체계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실 철학이든 과학이든 그 정신은 다분히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 학문의 주된 흐름이기도 하다.
여기에 미로슬라프 홀로프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상상력'. 그는 상상력은 반드시 반항적이고 반체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 반체제라는 단어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 시인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나의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광훈씨는 왜 소설을 쓰는 거죠"라고 물으며 자신은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그는 사회적 참여, 행동하는 지성의 몫을 나에게 강조하려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내용을 인용해 "예술에 있어서 미(美)는 양극(兩極)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예술은 광장을 지향하든 밀실을 지향하든 둘 다 그 치열함으로 인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조적인 그에겐 윤리나 도덕적인 틀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장이었겠지만. 그리고 나는 그의 사회적 참여 또한 아름답지만 나의 내면으로의 경도 역시 '아름답다'라고 덧붙였다. 참된 예술을 구분 짓는 것은 한 쪽으로의 치우침이 아니라 그 선택의 순수함에 다름 아니므로.
구원을 향한 치열한 자기인식과 자기 정체성에 관한 심도 있는 물음.
그래,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에 있어서의 진실이란 그 반대의 것 또한 진실이 되는 법이다'라고. 이것을 보르헤스는 '희극적 진실'이라고 정의했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예술에 있어 진실이라는 것은 상호모순적인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작가란 적어도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표상들을 차별 없이 견뎌낼 수 있어야만 한다.
우광훈〈소설가〉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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