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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작가의 고백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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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소설가〉

몇 년 전, 장편소설 출간이 무기한 연기되자 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문학상 투고. 609번 버스를 타고 우체국으로 향할 때쯤, 이번 원고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던 모 편집자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사실을 숨긴 채 다시 수정한 원고를 넘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판을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에게 '계약금 반환'에 관한 문자를 보내고, 해당 계좌번호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니 한편으로 개운했고, 또 한편으로 아쉬웠다. 그분이 나를 비난하는 것은 괜찮지만, 나로 인해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난 삼덕동에 있는 한 재즈카페에서 소설가 J를 만났고, 취기를 빌어 그 사실을 고백했다. 나를 위한 그의 배려(내 장편소설원고의 출간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동안의 사정과 나의 몹쓸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전, 전 소수의 독자만이 제 작품에 열광하는 그런 유니크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달랐죠. 어느 날 문득, 명성이란 것이 그리워졌어요. 그 명성에 대한 집착이, 아니 속된 욕망이 저를 점령하고 말았어요. 그건 허영이었어요. 그 저속한 허상이 눈앞에 엄연히 그 징그러운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어요. 전 정말 잘 익은 열매의 다디 단 과즙을 맛보고 싶었어요. 제가 여태껏 걸어온 길, 그 힘든 여정을 이번 작품만은 밟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방법이었어요.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데, 명성이란 스스로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에 맞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다음 기다려야 하는데, 전 그러지 못했어요. 고전의 충고는 찰나에 불과했고, 아귀 같은 녀석의 집요한 유혹에 전 결국 넘어가고 말았던 거죠. 그렇게 전 갈가리 찢겨져 완전히 파멸하고 말았어요."

헤르만 헤세의 전집이 녹나무처럼 펼쳐진 탁자 앞에서, 그렇게 길이 아닌 길을 택해버렸다고 고백하자 비로소 눈물이 났다.

J와의 우정이 깨어질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내 무지와 무능이, 그렇게 명성만을 갈망하다 파멸한 내 불우한 운명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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