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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치매에 대한 기억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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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소설가〉

몇 년 전, 치매로 인해 요양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계시는 고모부님을 찾아뵀던 적이 있다. 예전보다 볼은 더 야위었고, 눈은 움푹 패어 있었다.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씹고 계셨지만 입안엔 그 어떤 음식물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턱과 혀 때문에 무척 불편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묻는 말에 적절한 인용을 덧붙여 답하셨고, 작은 형님이 건네는 죽을 엷은 미소와 함께 받아드셨다.

작은 형님 말에 의하자면, 화투를 칠 때 눈에 보이는 패에만 집착하는 모습에서 치매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모부님은 병원진찰을 매번 거부하셨고, 자신이 조제한 한약만을 고집하셨다. 그러다 결국 몇 번인가 쓰러지신 후, 약물중독으로 인한 뇌손상이란 절망적인 결과를 접하게 되었다. 뇌의 상당량이 소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고모부님은 평생을 경찰로 지내셨다. 직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 또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셨다. 파출소장으로 정년을 맞으시고 지산동에 있는 용지봉 한 자락에서 밭일과 탑 만드시는 일로 여생을 보내셨다.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고모부님이 만드신 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역사라고 하기엔 그 기간이 짧고, 문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이었지만 그 둘을 엮어 표현하더라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광경이었다. 칠순을 넘어선 노인이 5m 가까이 되는 높이의 돌탑을 그것도 가파른 언덕길에 10여 개나 쌓았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그 탑을 쌓기 위해 주위 잡목들을 베어내고, 땅을 파헤치느라 도시환경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장과 벌금까지 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공무원들도 고모부님의 집착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에 못 이겨 이 탑만은 허물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난 그 기적 같은 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초인의 기(氣)와 함께 음산한 종말의 운(雲)마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진중한 예식처럼, 아니 주술적인 의식처럼, 고모부님은 그렇게 한 개 한 개 정성을 다해 돌을 쌓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시지프스의 음울하고도 부조리한 운명처럼 말이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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