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 유무, 출생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한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아동복지법 제2조 1항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어린이는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 부모 양쪽 모두 없을 수도, 부모 한쪽이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몸이 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어린이는 그 자체로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점이다. 편견과 불공정으로부터 보호받고, 건강하고 행복한 아동기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른의 중요한 책무다.
◆미혼모·미혼부의 당당한 육아
박근배(가명·대구 동구·31)씨는 2020년 7월 졸지에 미혼부가 됐다. 한때 교제했던 여성이 1년 만에 나타나 "당신의 아이"라며 맡긴 뒤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얼마 돼 보이지 않은 딸을 품에 안았지만 당시엔 황당하고 막막했다. 4일 만난 박씨의 얼굴에는 원망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박씨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딸과 행복한 시간을 갖기 위해 여러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에다 아이가 너무 어려 어린이날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박씨는 "이제 아이가 조금 크기도 했고, 코로나도 많이 완화됐기 때문에 아이와 처음으로 키즈카페를 가보려 한다"며 "여자아이라 그런지 예쁜 옷을 보면 '우와'라고 소리치며 거울 앞에 쪼르르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조금 더 지나면 예쁜 옷을 많이 사주고 싶다"고 했다.
미혼모 하윤서(가명·29)씨는 다섯 살 아들을 '복덩이'라고 불렀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하씨는 요사이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들 모습에 많이 속상해 하고 있었다. 그는 "놀이동산, 키즈카페 등에 자주 데려가는 편이었지만 이번 어린이날에는 더욱 신나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제 아이가 좀 컸으니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기로 했다"며 아들과 눈빛 교환을 했다.
삐딱하게 보려는 시선이 여전하지만 당당하게 자녀를 양육하며 살아가는 미혼모·미혼부가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를 '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로만 봐 주지 않기를 희망했다. 만 2세 딸을 키우는 미혼모 김모(40)씨는 "기업 면접 때 일이다. 취업 후 '아이를 어떻게 할 건지' 꼬치꼬치 물어 불쾌했다"며 "심지어 병원에서조차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입양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해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편견 가득한 사회의 시선에 불편감을 표출한 김씨는 "부모 중 한 명이 없지만 여느 평범한 가정과 똑같이 봐줬으면 좋겠다.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누구보다 더 잘 키울 자신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발달장애 아동도 한 명의 어린이다
하윤이(9·대구 동구)는 초등 2년생이지만 친구들이랑 의사소통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두 돌이 지나던 때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하윤이는 현재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지만 맥락 없는 말을 하거나 돌발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하윤이와 가족은 어린이날에도 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잦다. 어머니 김혜경씨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대구지부 부지부장(44)을 맡고 있다. 김 부지부장은 "발달장애 아이 중엔 감각이 극도로 예민한 아이가 많다. 하윤이가 더 어릴 땐 몸에 물을 묻히거나 옷을 입는 것도 불가능했다"며 "어린이날이 돼도 밖에 나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건 꿈도 못 꿨고, 키즈카페나 큰 행사에 가도 주위에 민폐가 되는 행동을 할까봐 걱정돼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내곤 했다"고 했다.
올해 열 살인 태웅이도 사정은 같다. 하윤이처럼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태웅이는 인지능력 등의 발달이 다른 아이보다 늦은 편이다. 어머니 박혜신(47·대구 동구)씨는 "아이와 함께 있으면 항상 돌발상황이 벌어지고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며 "어린이날이라고 밖에 나가면 아이의 행동을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도 불편해하는 것 같아 늘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냈다"고 울먹였다. 아이들도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놀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다. 하윤이는 "작년에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어린이의 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니까 즐겁고 신나게 보내고 싶다. 친구들이랑 뛰어놀거나 보드게임을 하고 싶다. 친구들이랑 놀 때 제일 즐겁다"고 했다.
다행히 올해는 이들 모두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대구 한 협동조합에서 장애 아동을 배려해 1대 1로 자원봉사자를 지원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장애아동도 '한 명의 어린이'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부지부장은 "별난 아이가 아닌 '한 명의 어린이'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희망했고, 태웅이 어머니 박씨는 "어린이날 행사가 다른 데도 많지만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된 행동을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는 인식과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다양한 가정 형태, 당연한 것"
전문가들은 편견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린이' 때부터 실천을 기반으로 한 인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경은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아동이 사회에 노출되기 시작한 게 30년밖에 안 된다. 미혼모·미혼부 혹은 장애아동에 대해 일반인은 '내가 배려해 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등 불편함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지역사회 내에서 인식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어린이들이 점차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가정 상황에 맞는 정부·지자체의 '맞춤형' 지원 체계도 필요하다. 남미경 대구한의대 교수(아동복지상담학과)는 "장애로 진단받았거나 또래보다 발달이 현저하게 느린 아동도 개별적인 특성과 요구에 맞는 지원이 적절하게 제공된다면 일상생활이나 사회 참여에서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며 "또 미혼모·미혼부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기에 정부·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지역사회와 정부는 이들이 사회에 제약 없이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과 동시에 사회구성원들이 편견에서 벗어나 '다름'을 존중하는 인식을 갖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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