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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대형업체가 시장 장악→투기 조장→구매 구조 경직화 '악순환'

2022-06-27

미술시장 호황 '빛과 그림자' <하> 시장 양극화와 기형적 모습

소수 대형업체가 시장 장악→투기 조장→구매 구조 경직화 악순환
지난 23~26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아트페어 대구'.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100여 개 화랑이 참가해 500여 명의 작품 5천여 점을 선보였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국내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활황에도 불구하고, 그 호황의 혜택은 소수의 업체와 소수의 작가에 쏠리는 양극화가 심각하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전체 화랑의 2%를 차지하는 상위 10개 화랑이 약 80%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정도다. 작가도 블루칩 작가와 최근 미술시장의 신고객 층으로 급부상한 MZ세대의 호응을 얻는 신진 작가 등에 편중돼 상당수 작가들의 판매 실적은 업계의 호황과는 딴 세상 이야기라는 푸념이 나온다.

또한 국내 미술시장은 최근 몇 년 새 풍부한 유동성과 투자적 요인에 의해 시장이 급속히 확장된 데다 '카더라 정보'의 양산, 묻지마 투자, 투기성 짙은 기획 세력의 개입 등으로 혼탁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작품 가격 상승의 기대감이 식는 순간, 시장이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역대 최고 호황이지만, 분위기가 작년보다 식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복수의 지역 갤러리 관계자들은 "갤러리들이 이제 미술시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일부 고가의 작품이 팔리고 풍부한 자본과 네트워크, 홍보력 등으로 소수 업체의 판매 실적이 높아 수치가 높을 뿐, 상당수 갤러리들은 큰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고 국내경기 침체 속, 아트페어에서도 호황 분위기가 꺼지기 시작하는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위 10개 화랑, 시장 점유율 80%
일부 작가에 업계 호황 혜택 편중
상당수 갤러리·작가는 체감 못해
국내 미술시장 빈익빈부익부 심각

"자본에만 매몰돼 미술가치 황폐화
화랑-경매사 역할 법적으로 분담
소수에 의해 장악되지 않도록 해야"


소수 대형업체가 시장 장악→투기 조장→구매 구조 경직화 악순환
현대백화점 대구점에서 열린 'iDAF22 프리뷰' 2부 전시 모습.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국내 미술시장의 심각한 편중화 현상

국내 미술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극심하다.

한국화랑협회가 지난 1월 주최한 '시각예술 제도개선 세미나'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이임수 홍익대 미술대학 조교수의 발제문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방향'에 따르면, 2019년 기준(2020 미술시장실태조사)으로 전체 화랑의 2.1%를 차지하는 국내 상위 10개 화랑의 시장 점유율은 무려 78.6%에 달했다. 경매시장에서도 상위 2개 경매회사가 83.9%의 시장을 차지했고, 아트페어에서도 상위 5개 화랑의 판매액이 79.6%의 시장을 점령했다. 이에 반해, 국내 화랑 중 약 75%는 연간 총 매출액이 1억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임수 홍익대 미술대학 조교수는 "미술시장은 독과점 시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수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소수의 대규모 유통 기관들이 미술 시장을 장악해 한정된 예술가들에게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시장 자체가 단조로워진다. 한국 미술시장의 양극화는 소수 인기 작가에 대한 편중으로 미술시장의 투기적인 성격을 야기하고, 구매자 층의 구조를 경직화시켜 새로운 소비자 및 구매자 층을 생성할 가능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 이는 결국 미술시장의 음성화와 신뢰도 하락, 일부 대형 업체와 예술가에 대한 쏠림 현상, 해외로의 구매자 이동 등의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양극화 문제는 열악한 재정적 상황에 있는 대부분의 중소 화랑들의 운영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또한 미술 시장의 주요 유통영역, 즉 화랑과 경매회사의 역할을 법적으로 제대로 분담해 시장이 소수에 의해 장악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음성화돼 있는 미술시장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개선방향으로 △개인의 문화비 소득공제에 미술품 구입비를 포함하고 소득공제 한도를 현재 연간 100만원에서 상향 조정 △법인의 미술품 구매 손금산입 한도 확대 △중등과정 미술교과 과정에서 미술 감상 및 미술사 교육 강화 교육 △미술시장 내 공공영역과 유통영역, 1차 유통자와 2차 유통자의 효율적 역할 분담과 협업 유도 등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작가도 빈익빈 부익부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미술시장의 호황의 혜택은 이름만 들으면 아는 블루칩 작가와 아직 작품 가격대가 크게 높지 않는 트렌디한 신진 작가들에 편중돼 있다. 블루칩 작가의 경우 금·달러와 같은 자산으로 인식되며 투자의 개념으로 거액의 작품도 속속 팔려나간다. 신진 작가의 경우 향후 작품 가치가 오를 것을 대비한 투자 개념이 강하다. 이 틈 바구니 속에서 중견 작가들은 소외되고 있다.

지역의 한 화가는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이라지만 상당수 작가와는 큰 상관이 없다. 전시 기회가 많아지기야 했겠지만, 작품의 판매는 작품성뿐 아니라 자본, 판매 네트워크, 홍보력 등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면서 "작업을 열심히 해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작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가격 거품, 투기 세력 개입 등 기형적인 모습

지역 갤러리 관계자들이 최근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호황은 풍부한 유동성과 아트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투자 개념이 강하게 침투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미술이 가진 감상과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자본에만 매몰돼 미술이 가진 가치가 황폐화될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히려 대중의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지속가능한 미술 발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미술품에 대한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가격 거품과 투기 세력 개입 등에 따른 시장 혼탁화 등 시장의 기형적 형태에 대한 지적도 적잖게 개진되고 있다.

지역 미술계에 따르면, 국내 미술계에 가족·지인을 동원해 작품값을 올려놓는 작가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작품을 구매해 풀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보관하다 더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다는 말도 들린다. 미술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공장처럼 작품을 찍어내기도 하고, 자신의 예술혼보다는 그냥 팔릴 만한 트렌디한 요소들을 이리저리 편집해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갤러리의 대표는 "투자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미술품이 좋아서 구매했더라도 작품 가격이 내렸다고 하면 속이 쓰린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지금 미술시장은 경매시장의 시장 흐리기, 이상적인 가격 상승 등 자본의 힘에 의해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빠르게는 1년 내에 가격 거품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소장은 "현재 미술시장은 미술 작품이 과정과 내용보다는 '얼마짜리'로 평가되며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 되고 있다. 미술 시장이 커지면서 작가들이 나도 열심히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자본의 영향으로 건강한 미술과 미술시장 관계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작가, 컬렉터, 미술시장의 1차 유통자인 화랑, 2차 유통자인 경매시장 등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할 때 시장은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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