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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작은 마음일지라도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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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방송작가

'현관 앞'이라 썼다가 지우고 '현관 앞 부탁'이라 썼다 또 지우고 결국 '현관 앞 배송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하고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주문서를 작성하다 보면 요청사항을 작성하는 칸이 있는데, 그곳에 쓰는 말을 세 번을 지웠다 다시 쓴 것이다. 사실 세 표현 모두 같은 의미이다. 길게 쓰건 짧게 쓰건 주문에 큰 지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경우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자주 고민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나를 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게 될 누군가가 생각나서다. 휴대전화 터치 한 번으로 물건을 집 앞에서 받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됐다. 그러나 그 좋은 세상을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수고 덕분이라는 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치른 값에는 배송 서비스에 대한 부분까지 포함돼 있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이 매긴 값과 사람의 가치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에서 피자를 시킨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평소보다 좀 늦는다 싶을 때 전화가 왔다. 배달하는 청년이 빗길에 미끄러져 음식을 다시 해야 하니 시간이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양해의 전화였다. 얼마든지 괜찮다고, 많이 다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천천히 가져다주시면 된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때 나는 피자가 왜 오지 않느냐며 불평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내 아이가 아르바이트하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 나의 아이들도 누군가의 작은 배려와 격려로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돈으로 모든 것이 갈음되는 자본주의 사회, 사소한 것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세상이 매긴 값만 치르고 살다 보면 쉽게 사람을 잊게 된다. 누군가의 수고와 땀, 애씀 같은 것들 말이다.

책 '별것 아닌 선의'에는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그런 별것 아닐지 모를 작은 마음들이 자꾸만 피어났으면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런 작고 다정한 선의가 실개천 흐르듯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강이 되고 다시 또 다른 강을 만나 바다처럼 넓어지고 커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소한 주문서 요청사항 한마디에, 고객센터 문의 전화 한마디에도 작은 마음을 내어 보려 고민한다.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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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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