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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운부암 느티나무를 만나러 가는 날

2022-08-10
[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운부암 느티나무를 만나러 가는 날

흰 구름 피어오르는 하늘을 보니 남태평양이 부럽지 않다. 오랫동안 친정 드나들 듯하는 운부암으로 간다. 창건 당시 상스러운 구름이 떠 있어 이름 지었다는 그곳을 향할 때면 구름보다 내 마음이 더 들뜬다. 미리 일정을 계획하고 가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문득 나설 때도 있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기에 몇 군데 전화하면 누구든 동행이 된다.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이처럼 마음 가는 곳이 있다니 행운이다.

우람한 일주문을 지나 솔밭 길에 들어서면 속세의 번잡한 일들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은해사는 진작 관심에서 비껴있고, 곧장 계곡을 따라 나무와 풀꽃과 동무하며 걷다보면 신일지에 이른다. 번듯한 팔각 정자가 있지만 저수지 옆 돌 탁자에 죽은 나무 등걸을 잘라 만든 의자가 내 자리다. 이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이보다 나을까. 청청한 여름도,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가 피는 봄에도, 단풍 고운 가을에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조차도 이곳은 늘 나를 부른다. 가다가 산 쪽으로 난 오솔길로 들면 더욱 운치 있다.

오늘은 초록숲 속에서 주황색 산나리가 단연 돋보인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단청 없는 소박한 암자가 나타난다. 보화루에 앉아서 내다보는 차경도 계절에 따라 멋진 산수화를 보여준다. 이곳을 기도처로 삼는 지인이 걸어놓은 서각과 불이문을 지나 계단에 놓아둔 와각도 정겹다. 굳이 불당에 들르지 않는다.

서편 요사채 뒤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느티나무가 내 기도처다. 처음 이 나무를 만났을 때 충격적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치 오래된 나무는 속살은 시커멓게 타고 수피만 남아 있는데도 해마다 물을 길어 올려 잎을 틔운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둔 곳에 잎이 나고 자랐다는 이 나무가 어느 해 여름 벼락을 맞았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 곳에서 촛불을 켜고 지성을 드리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속이 다 탔다고도 했다. 그 날의 참상과 흔적이 보이는 듯 살아온 흔적인 나이테도 다 지워버렸다.

애면글면 속 끓이는 자식 걱정에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늙은 어미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 이 경이로운 나무 앞에 서면 생명의 존엄성에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나무를 알현하고 내려오는 길, 계곡의 물소리를 다음에 또 오라는 속삭임으로 들으며 속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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