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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기록만화가 주는 힘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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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 (작가)

7월이 마무리되어 가며 언제 가뭄이 있었냐는 듯 장마가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구슬비가 내릴 때 자주 창문을 열어두고 빗소리를 들으며 일상을 보냈다. 흙이 마른 아이비 화분을 창가에 놔두었고, 작은 잎에 송골송골 맺힌 빗방울이 나에게 작은 기쁨이 되어 주었다.

이렇듯 요즘의 나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엔 종종 삶을 비관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일상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암울한 마음이 지속될 때 나는 하루 종일 멍 때리다가 책장에서 좋아하는 만화책을 여러 권 꺼내놓고는 했다. 바닥에 쌓아놓은 만화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좋아하는 장면을 찾아보았다. 자주 봤기에 친숙하게 느껴지는 주인공의 얼굴을 보며 인생의 답을 찾으려 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면서 이란의 혼란스러운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기록만화이다. 이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열네 살이 되어 유럽에 도착한 이후 성인이 된 마르잔은 자신이 이란 여자도 서양 여자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유럽으로 떠나기 전 마르잔에게 할머니가 단단히 일러주신 것처럼 그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늘 품위를 잃지 말고 너 자신에게 정직하도록 해라."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빨간색의 표지에 묵직한 먹으로 그려진 단행본의 표지를 발견했던 기억이 난다. 조국과 전쟁을 언급하는 어려운 말로 이루어진 대사가 당시에는 잘 읽히지 않았기에 묵직한 먹으로 거침없이 그려진 그림만을 구경했었다. 성인이 되어 이 작품을 다시 들춰보았을 때, 전쟁 시대를 겪는 와중에서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는 마르잔을 보며 기록만화가 주는 힘에 대해 깨달았다. 미래가 걱정되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 과거의 혼란한 한때를 비추는 작품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나 또한 '페르세폴리스'를 읽으며 나의 시대를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만화를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덧 인생의 멘토를 찾는 것 같던 경직된 마음은 사라진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대화하는 순간처럼 느껴지며, 불안함을 잠재우는 것은 일상을 잘 보내는 일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 나의 고민과 걱정거리가 먼 미래에서 봤을 때 얼마나 작고 초라할 것인가를 예감해 보면서 말이다. 나는 매일매일 오늘의 할 일을 할 뿐이다. 미뤘던 책상 정리를 하고 메일에 답장하고 끼니를 제때 챙겨 먹고 종종 만화책을 들춰보면서.

근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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