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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조<수필가> |
목 뒤에 생긴 염증으로 여러 날째 피부과 병원에 다니고 있다. 운동하다 벌레에 물린 듯한데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목 주변이 붓고 딴딴하게 굳는다. 그냥 지나기에는 더욱 악화할 것 같아 동네 병원을 찾았다. 개인병원이지만 진료실이 세 개나 되는 등 규모가 꽤 큰 데다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직원이 직접 나서 친절하게 등록 방법을 안내해 준다. 그러면 접수순대로 전광판에 이름이 뜬다. 무척 세련되고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소파에 앉아 호명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이런 장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진료를 마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무료할 수 있을까. 시간이 한참 지나 직원에게 물어보면 "진료가 끝나면 창구로 오셔야 합니다"란 대답이 돌아온다. 어느 곳에 이를 안내한 바 없어도 창구에서는 알아서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반복하는 번거로운 절차임을 알았다. 이걸 처음 오는 사람이 모른다고 지적받을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하기 어려웠다. 다른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개선하고 싶었다. 숙고 끝에 직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잘못하면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터다. 이처럼 진료를 마친 사람에게 무작정 기다리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창구에다 '진료를 마치면 이곳 수납 창구로 오세요'라는 식의 안내문을 붙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거부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선의의 제언으로 받아들이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았더니 바뀐 모습이 눈길을 끈다. 또렷한 글씨의 방(榜)이 접수창에 붙었다. '진료 다 보신 분은 기다리지 마시고 수납 창구로 오셔서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안내문을 부착한 후 반응을 물었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병원 측이나 손님 불편이 말끔하게 해소되었다며 크게 감사한다. 나의 작은 제안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방(榜)으로 화답해 준 병원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성병조<수필가>

성병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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