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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애써 덮어뒀던 그 시절…좋아하는 걸 좋아했던 나를 다시 만나"

2022-10-21

[제29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대학·일반부 최우수상-백범석 '좋아하는 걸 좋아해'

애써 덮어뒀던 그 시절…좋아하는 걸 좋아했던 나를 다시 만나

"넌 뭘 좋아해?"

나는 얼어붙었다. 동그란 눈, 동그란 얼굴의 그녀가 동그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별 뜻 없이 건넨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당황했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그녀가 내게 무얼 좋아하느냐고 묻고 있다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동그란 이마만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두근거려서 도저히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마치 속마음이라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바로 너야.'

그녀는 예뻤다. 예뻐도 너무 예뻤다. 세상에, 그런 그녀가 이제는 내 사랑이 되었다. 나는 반짝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햇살이라도 내리쬐는 듯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녀도 자신을 바라보는 내 표정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는 걸 참 많이도 좋아했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의 눈에 비친 서로의 모습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좋았다. 특히, 그녀의 까만 눈동자 안에 쏙 들어앉은 내 모습을 바라볼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를 바라볼 때면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세상은 조용해지고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처럼 그녀를 좋아했던 경험은 분명 귀하고 특별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 좋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할 정도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왠지 맛있었고, 그녀가 읽는 책은 왠지 모르게 나도 재밌게 느껴졌다. 언젠가 그녀가 한쪽 이어폰을 건네며 그 노래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내게 그 이야기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나는 그 속에 들어가 나를 알지 못하는 다른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좋아하는 게 참 많았다. 바다를 좋아하고 산도 좋아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을 보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야호'를 외치는 통에 당황한 적도 많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까르륵 즐거워했다. 힙합을 좋아했고, 발라드도 즐겨 들었다. 영화도 책도, 운동마저도 좋아했다.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녀는 마치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무엇을 하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녀였다. 그녀가 형형색색 무지개 같았다면, 그 시절 나는 흐리멍덩한 먹구름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그녀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 역시 덩달아 반짝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만 있다면 마냥 좋았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면 나도 좋았다. 나는 딱히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녀를 따라 소리를 지르고, 함께 웃고, 걸으며 나 역시 행복했다. 나는 어느새 그녀처럼 '야호'를 외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영화에 푹 빠져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게 많았었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좋아하는 게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마치 너무 오랜 시간 새장에 갇혀있던 새처럼, 처음부터 날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어깨에는 이미 꽤 근사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동안 나는 문도 잠겨 있지 않은 새장을 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아직 나는 좋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녀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그녀처럼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래서 끌렸던 것 같다.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 닮아서 말이다.

책 '호호호'의 작가 '윤가은'은 그녀와 참 많이도 닮았다. 나는 '호호호'를 읽으며 그녀가 떠올랐다.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라 할 정도로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며, 그 시절 그녀가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함께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 이처럼 '호호호'는 그 시절 그녀뿐 아니라, 그동안 모르는 척 덮어뒀던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좋아하는 걸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말이다. 나는 '호호호'를 읽는 동안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자리한 행복한 내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호호호'와 함께한 시간은 '호호호' 그 설레는 웃음소리처럼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호호호'에는 기분 좋은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호호호'는 지친 하루를 보낸 나에게 작가가 전하는 위로 같았다. 책 이름을 말할 때 동그랗게 모이는 입 모양처럼 나를 동그랗게 안아준 책이었다.

그녀와의 추억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딱히 좋아하는 게 별로 없다. 때로는 '이 나이를 먹도록 무얼 했나?' 싶은 마음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동그란 그녀를 만나던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넘쳐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해야 할 일'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좋아하는 마음'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차라리 그 빛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 나는 언제나 그것들을 못 본 체했다.

그런데 정말로 못 본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 나는 마치 두더지 게임이라도 하는 듯 그것들을 다시 밀어 넣었다. 그것도 아주 못되게 말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바삐 움직이며, 나 자신을 더 많이 괴롭혔다. '나중에… 취직하면… 승진하면… 이직하면… 다음에… 또 다음에….' 핑계가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호호호'를 읽고, 이제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그 모든 핑계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핑계가 있던 자리에 '좋아하는 마음'을 고이 모셔볼 생각이다. 모나고 상처 난 나 자신을 이제는 동그랗게 안아주고 싶다. '호호호' 덕분이고 그녀 덕분이다.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그라들기 전에, 그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려보고 싶어졌다. '호호호'처럼 나를 기분 좋게 안아주던 그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족한 시간이지만, 좋아하는 걸 좋아해 볼 생각이다. 그러자면, 나 자신에게 좀 더 상냥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호호호'의 아담 문방구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돌보려 한다. 작고 연약한 마음들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다정하게 격려하던 아저씨처럼, 나 역시 내 마음에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보낼 생각이다. 그 시절 그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모르는 척 덮어두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따뜻한 마음은 사는 게 힘들고 지칠 때, 삶의 열정이 식다 못해 얼어붙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돌아보면, 그녀와의 추억처럼, 무언가에 흠뻑 빠졌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서 내 삶을 보듬어주고는 했다. 일에 치이고, 일상에 지칠 때면, 나는 추억 한 조각을 꺼내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던 것 같다. 추억은 마치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처럼 나를 위로했다. 모든 게 다 귀찮고, 다 싫어질 때, 무기력이 끝없이 밀려올 때,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그 시절 추억은 삶의 방파제가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추억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희망이 되어 주었다. 마치 먹구름이 가득한 답답한 하늘에 내리쬐는 햇살처럼 다시금 고개를 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삶이 되기도 한다. 그녀와의 시간, 무언가를 그토록 좋아했던 그때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이런 추억은 켜켜이 쌓여 곧 삶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영화와 아이를 좋아했던 '호호호'의 작가는 훗날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 이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무엇을 좋아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무언가에 미치도록 빠졌을 때, 너무 좋아 눈물이 날 지경일 때, 비로소 삶이 한 줄 기록된 것 같다. 어쩌면, 삶은 '그냥 살아갈 때'가 아니라, '마냥 빠졌을 때' 비로소 채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없는 삶,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던 인생은 마치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책처럼 공허할 것이니 말이다.

애써 덮어뒀던 그 시절…좋아하는 걸 좋아했던 나를 다시 만나

이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삶을 빛나게 만들어준다. 평범한 물결을 반짝이는 윤슬로 빛나게 해주는 햇살처럼, 평범한 상자를 설레는 선물로 만들어주는 예쁜 리본처럼 삶에 가치를 더해 준다. 그리고 어쩐지 이런 추억 하나만 있다면, 힘든 삶도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나를 살릴 추억 하나, 그 시작은 바로 좋아하는 마음에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것이기에, 이제부터라도 나는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호호호'의 작가처럼, 나도 나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해 볼 생각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그것은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가장 멋진 삶의 방식인 것만 같다. 그 시절 그녀처럼, 나는 나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넌… 아니, 난 뭘 좋아하느냐고.

# 그리고 남은 이야기

무얼 좋아하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흔해 빠진 운동도, 음악 감상도 그때는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건 정말로 그녀뿐이었기 때문이다. '호호호'를 읽고 나니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아쉽기만 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바로 너야.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너랑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함께 좋아해 보고 싶어. 우리 함께 좋아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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