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란 사람에게 존재의 근원이자 본향
거주를 통해서야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존재
40대 후반에 늦깎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
詩도 써야 작품이 되듯 집 짓기도 실행부터
구상·설계 거치는 '집 짓기'는 '詩 짓기'와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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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
텃밭에서 거둔 무와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나면 한겨울 산촌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저녁마다 온돌방을 덥히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게 하는 일의 전부다. 땔감으로는 참나무 장작을 쓰지만, 가끔은 '나무부처를 토막 내어 언 몸 녹이는 불쏘시개로 썼다는/ 단하 선사를 흉내 내어/ 벽장 가득 꽂혀있는 책 무더기를 아궁이에 던져 넣고는/ 냉골 구들 덥히는 땔감 삼아 화톳불을 당'기기도 한다(졸시 '분서, 책을 불태우다' 부분). 그것도 심심하면 '얼기설기 쌓은 참나무 장작 위에/ 속진에 찌들어 바싹 마른 몸뚱이 누이고는/ 홀로 다비식을 치'르기도 한다(졸시'아궁이 앞에서' 부분). 이승의 삶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명철한 의식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큰 깨달음을 얻고 죽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몸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모두 죽는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이 자명한 진리를 알고 있지만, 누구나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 싶다.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사랑스러운 푸르름 안에'라는 시에서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고 노래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남겼지만, 정작 그의 삶은 가난하고 불운하였다. 고통이 담금질하지 않고 시련이 시인의 삶을 갈고 다듬지 않으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는 태어날 수 없는 것일까. 시와 시인은 선연일까, 악연일까. 둘의 인연에서 드러나는 지독한 역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횔덜린이 쓴 이 시구(詩句)를 처음 읽은 것은 공교롭게도 시집이나 문학작품이 아니라 어느 건축학자가 쓴 글에서였다. 집을 지을 생각에 여러 정보를 모으고 글을 찾아 읽는 중에 우연히 이 문장을 보았다. 처음에는 건축학에서 널리 쓰이는 말인 줄 알았다. '이런 멋진 글귀를 누가 썼을까'란 호기심에 찾아보니 횔덜린이 쓴 시의 한 구절이었다.
굳이 횔덜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산다. 땅에 기대어 살고, 땅을 딛고 산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땅은 사람에게 생존할 수 있는 당위이자 현실이다. 사람에게 땅은 생명이다. 그 생명이 다할 때 사람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사람에게 존재의 근원이자 본향이다.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사람에게 땅은 살아서는 물질적 욕망의, 죽어서는 영생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살아있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욕심을 버릴 만도 한데 사람은 죽어서도 넓은 땅에서 화려하게 치장된 석물에 둘러싸인 무덤에 눕기를 바란다. 죽어 한나절만 지나도 썩기 시작하여 결국 한 점 먼지로 사라질 육신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사람은 죽어서도 자신 소유의 땅을 가지고 싶어 할까. 땅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내면에 잠재해 있는 본원적인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횔덜린은 우리에게 이 땅 위에서 살되 '시적으로' 살라고 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시적으로' 살려고 해도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집을 짓고 살지 않을 수 없다. 산다는 것은 거주하는 것이고, 거주를 통해 비로소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마치 시인이 언어라는 도구를 빌려 시를 짓듯이 사람은 땅이라는 현실의 공간에 집을 지어 산다. 시 짓기와 집 짓기는 무엇을 짓는다는 점에서 그 맥락이 같다.
시 짓기는 오랜 꿈이었다.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시 짓기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사십 대 후반에 늦깎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시를 쓴다 혹은 짓는다란 말이 가진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욕망은 물론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저 시를 쓰거나 짓는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집 짓기도 시 짓기와 같다. 집터를 찾고, 돈을 마련하고, 집의 모습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멋지고 화려한 집도 가보았고, 소박하게 꾸민 집도 가보았다. 집의 크기나 화려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시도 써야 작품이 되듯 집도 마찬가지다. '내일, 다음에'라며 머뭇대고 미루다 보면 영영 집을 지을 수 없다.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결단을 내리고 일단 첫 삽을 떠야 한다. 머릿속으로 제 아무리 구상을 한들 현실에서 직접 짓지 않고는 모두 하룻밤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집을 짓는 기대로 한껏 들떠있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 많은 페친들이 댓글과 이모티콘으로 축하해 주었다. 으쓱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목수로 일하는 어느 페친이 쓴 댓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집 짓지 마세요.' 그 글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혀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집짓기를 직업으로 하는 목수의 '집 짓지 마세요'라는 말은 '시 짓지 마세요'라는 은유로 들렸다.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시인이 되어야겠다'라든지 '멋진 시를 써야겠다'라는 욕심이 없었다.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슴에 응어리진 회한을 시로 풀어낼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시집을 내고 문단에 얼굴을 내밀자 상황이 달라졌다. 시인으로 데뷔를 한 이상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피할 도리가 없다. 내가 쓴 시를 읽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았다는 격려도 있는 반면, 작품성이 떨어진다며 혹평을 하는 시인과 독자들도 있었다. 남의 평가를 받고 시선에 신경 쓰다 보니 시를 쓰는 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다시 시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곤 했다. 집짓기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맞고 보니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수가 던진 질문을 가슴에 품고 집을 지으면서 내심 이렇게 생각하였다. 집을 짓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목수가 집 짓지 않고 시인이 시 짓지 않으면,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랑 노래는 누가 지을까. 목수와 나 자신에게 하는 변명이자 위로였다. 목수의 말을 듣지 않고 집을 지었다. 그 대신 횔덜린의 말을 따라 '시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으로 그 미안한 마음을 갈음하기로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산촌의 하루는 해 뜨면 새소리와 함께 일어나 정원의 나무와 꽃, 그리고 텃밭 채소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텃밭농부가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이/ 꼿꼿한 허리 숙여/ 밤새 무탈한가 안부 묻고는//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고/ 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얼굴 부비고// 아프면 약주고/ 목마르면 물주고/ 벌레 있으면 잡아주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졸시 '텃밭농부의 자세·1' 부분). 그러다 해지면 고요와 정적에 묻혀 책 읽고 시를 짓다가 잠든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위압적인 마천루로 가득 찬 도시의 삶이 아니면 어떤가. 전원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다 자연의 포근한 품에 안겨 잠자듯 죽는 삶이어도 좋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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