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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
"나는 사회 상류계급 인사들에게 간청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욕심을 자제해서 공존공영하는 사회의 출발선에 함께 선다면 이러한 그릇된 사회현상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비극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고 틀림없이 영원한 평화가 확립될 것이다."
이 말은 100년 전에 대구의 가난한 조선인들과 함께 살면서 1천세대에 달하는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한 어느 일본인의 간청이다. 3·1운동 이후 식민지 지배정책이 유연한 듯 촘촘해지는 상황에서 '후지이 추지로'라는 일본인은 왜 이런 간청을 했을까?
후지이 추지로가 언급한 '그릇된 사회현상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비극'은 다름 아닌 빈곤과 격차 문제였고 그것이 낳은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들)' 문제였다. 이 무명의 일본인은 일본 본토 통계까지 끌고 와서 대구가 조선과 일본을 통틀어 '아이들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도시'임을 보여준다. 당시 도쿄보다도 아이들이 많이 버려지던 도시가 대구였다. 100년 전 기록에서 지역의 또 다른 과거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지이 추지로가 특별한 것은 추상적인 말이나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대구를 사례로 1920년대 조선인 빈곤 문제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식민지 시기 전체를 통틀어 조선인 빈곤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받는다. 첫머리에 소개한 말은 후지이 추지로가 20년 넘게 가난한 조선인들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본 또 다른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년 1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번역한 그의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마지막 문장의 울림이 컸다.
100년 전 대구의 일본인이었던 후지이 추지로의 간청은 지금을 돌아보게도 한다. 물론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사회는 그가 언급한 빈곤과 격차 문제를 해소한 부분이 없지 않다. 뉴스와 신문이 보여주는 수치들은 한국 사회가 상당한 경제적 부를 축적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다시금 사회적 격차가 꾸준히 벌어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격차 문제는 현재 다양한 '위기'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100년 전의 간청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2008년 봄에 대구·경북 지역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보고 배우고 깨달은 것이 많다. 그리고 점차 '지역'은 내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몰랐던 '지역격차'를 체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지역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야만 하는 현실이 가장 뼈저리다. 지역인재가 지역을 떠나는, 혹은 버리는 곳에 미래가 있을까? 다른 산적한 문제도 많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때 정책 지원, 재정 지원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지역의 미래세대 모두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차별 없는 애정과 태도이다. 당장 성과를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며 뼈를 깎는 노력과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토끼 같은 지혜와 거북이 같은 발걸음이 절실하다. 지역대학의 교육자로서, 또 지역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후 칼럼에서는 최근 시작한 실험들과 주목할 움직임들 그리고 지역에 대한 단상을 공유하려 한다.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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