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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의 제3의 눈] 버마 쿠데타 2년, 무장투쟁을 본다

2023-02-01

피투성이 속 소수민족 무장투쟁…'통일전선' 꽃피울 수 있을까

[정문태의 제3의 눈] 버마 쿠데타 2년, 무장투쟁을 본다
소수민족 까레니군(KA)의 전선 투입 점검 훈련. 정문태 방콕특파원

"버마 군사정권은 폭력을 중단하고, 자의적으로 구금한 모든 수감자를 석방하고, 소수민족을 보호하고, 인도주의 지원이 입국할 수 있도록 하라."

지난해 12월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내놓은 결의안 2669호(2022)다. 버마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낚아채고 스물두 달이나 지나 가로늦게 친 뒷북이었다. 으레, 구속력도 해결책도 없는 말치레를.

그 사이 버마는 온 천지가 전쟁터로 변했고 시민사회는 쑥밭이 됐다. "2023년 1월26일 현재, 반군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 2천892명이 살해당했고, 1만3천680명이 감옥에 갇혔고, 143명이 사형선고 받았고, 민주화운동 지도자 지미(Jimmy)를 비롯한 넷이 교수형 당했다." 버마 정치범지원회(AAPP)를 꾸려온 보찌(Bo Kyi) 말처럼.

"애초 이문 따라 움직이는 유엔이나 국제사회 기대 안 했다. 오롯이 우리 힘으로 싸우자고 다짐했던 까닭이다. 8888 민주항쟁 때도 그랬다. 잠깐 떠들고는 그뿐이었다." 1988년 민주항쟁 때부터 35년째 반독재 무장투쟁전선을 달려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Than Khe) 말마따나 쿠데타 뒤 한 서너 달 반짝했던 국제사회는 눈길을 거뒀고, 국제 언론도 이제 버마를 소 닭 보듯.

버마군 총사령관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이 쿠데타로 권력을 쥔 게 2021년 2월1일이었으니 꼭 2년 전 오늘이었다. 학살 군부가 날뛴 지난 2년 동안 버마 시민사회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희망의 불씨를 모질게 지펴온 이들이 있었다.

[정문태의 제3의 눈] 버마 쿠데타 2년, 무장투쟁을 본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의 민중방위대·지역방위대 자원병의 군사훈련. 정문태 방콕특파원

"피로 진 빚 피로 갚는다." 마그웨이의 대학생 람뗏(22)처럼 살해당한 자매 형제 벗들의 피로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숱한 시민이 총을 들었다. 반독재 무장투쟁, 버마는 힘들고 외로운 길로 들어섰다. 소수민족무장조직(EAOs)과 망명 지하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를 줏대 삼아.

버마는 인구의 45%를 웃도는 135개 소수민족이 어우러진 다민족사회다. 그 가운데 까렌민족해방군(KNLA), 까친독립군(KIA), 샨주군(SSA), 친민족군(CNA)을 비롯한 30여 개 웃도는 소수민족무장조직이 1948년 버마 독립 뒤부터 해방투쟁을 벌여왔다. 이 해묵은 소수민족분쟁은 영국 식민주의자가 남긴 흉악한 유산이었다. 영국은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다수 버마인을 통치한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에 맞서고자 전후 독립을 약속하며 소수민족을 전선에 투입했다. 전쟁이 끝나고 1947년 버마 독립투쟁 지도자 아웅산 장군과 소수민족은 빵롱협정(Panglong Agreement)을 통해 버마연방 창설에 합의했다.

그러나 영국은 소수민족 독립 약속을 팽개친 채 사라져버렸고, 버마 정부는 협정을 깨트리고 소수민족 차별과 박해의 현대사를 열어젖혔다. 소수민족무장조직들이 해방투쟁의 깃발을 올린 까닭이다.

소수민족무장조직 가운데 까렌민족해방군과 친민족군을 비롯한 아홉은 2011년 버마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2021년 쿠데타 뒤 정부군 공격을 받아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비휴전 그룹인 까친독립군과 따앙민족해방군(TNLA)을 비롯한 넷은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을 결성해 쿠데타 전부터 정부군과 싸워왔다. 하여 현재 소수민족 전역에 전선이 펼쳐진 상태고 8만5천 웃도는 소수민족 해방군이 정부군과 전쟁 중이다.

[정문태의 제3의 눈] 버마 쿠데타 2년, 무장투쟁을 본다
까렌민족해방군(KNLA)의 정부군 기지 공격.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제공>

바로 이 소수민족무장조직이 해방구도 없고 전쟁 경험도 없는 국민통합정부의 무장투쟁에 발판을 깔아주고 뒷심을 댔다. 감옥에 갇힌 대통령 윈민(Win Myint)과 국가고문 아웅산수찌를 제외하고 지도부 모두가 소수민족 해방구에 몸을 숨긴 국민통합정부는 군사훈련에서부터 무기, 보급, 통신, 정보까지 다 소수민족무장조직 도움을 받아왔다. 다른 말로 버마 반군부 무장투쟁의 실질적인 동력은 소수민족무장조직이란 뜻이다.

국민통합정부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뽑힌 상·하원 의원들이 쿠데타 뒤 결성한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굴대 삼아 정당, 시민단체, 소수민족이 함께 2021년 4월16일 수립했다. 이어 국민통합정부는 군인들에 맞서 사제 무기로 저항하는 시민한테 자극받아 5월5일 민중방위군(PDF)을 창설해 반독재 무장투쟁을 선포했다.

"민중방위군은 북부, 남부, 중부, 동부, 서부 5개 사령부 아래 각 3개 여단 5개 대대로 꾸리고, 지금 3천 병력을 올해 말까지 1만5천으로 키워낼 수 있다. 독재자를 쫓아내고 민주연방 창설 때 이들을 연방군으로 삼을 계획이다." 민중방위군 창설 3주 뒤 비밀스레 만난 국방장관 이이몬(Yee Mon)과 인터뷰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그리고 스무 달이 지났다. 현재 민중방위군은 3개 사령부 아래 200~500 병력을 지닌 221개 대대, 총 6만5천으로 불어났다. 그 가운데 25%는 M-16 소총을 비롯한 정규군 무기로, 40%는 무기제조창 70개에서 손수 만든 사제 무기로 몫몫이 무장했다.

단기간에 자력으로 이만한 시민 군사조직을 꾸렸다는 건 세계혁명전사에서도 흔치 않다. 소수민족무장조직 가운데 최대 화력과 재원을 지닌 까친독립군의 병력이 2만인 현실과 견줘볼 만하다. 으레 62년째 싸워온 까친 전사들과 전투력을 견줄 순 없지만 적어도 몸집만큼은.

흔히들 무장조직의 덩치를 총값으로 가늠한다. 예컨대 요즘 버마 국경으로 흘러가는 M-16 소총 한 자루가 4천~5천달러까지 치솟았다. 1만 병력을 무장하는데 어림잡아 600억원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 실탄과 군장과 전비까지 보태면 1인당 곱하기 3이다.

이건 그동안 지하정부가 전비 마련에 목맨 결과다. 지하정부는 혁명 채권, 스프링 복권, 토지 매각(정부 소유 가상 판매), 암호 화폐 거래(NUG-Pay)를 통해 지난해 중후반까지 5천500만달러를 모금했다. 버마 안팎 시민사회가 지하정부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련한 밑천으로 지하정부는 민중방위군과 따로 마을 단위 민중방위팀(PDT) 250여 개까지 꾸려왔다. 사제 무기로 무장한 이들은 대중봉기와 보급투쟁을 통해 민중방위대를 지원하는 조직이다.

이쯤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쿠데타 군부의 학살 진압에 맞서 사제 무기로 무장투쟁 불길을 지핀 400여 개 지역방위군(LDF)이다. 이들이 바로 국민통합정부의 무장투쟁 노선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애초 독자적 재원과 조직으로 태어난 지역방위군이야말로 진짜 시민군으로 볼만하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를 발판 삼아 정부군 행정 시설 파괴와 기능 마비를 목표로 게릴라전을 벌여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방위군 가운데 25%쯤은 국민통합정부와 연대 투쟁하는 사이 민중방위군에 편입되었고, 까레니민족방위군(KNDF)과 친랜드방위군(CDF)을 비롯한 일부 지역방위군은 소수민족무장조직한테 훈련과 무기 도움을 받아왔다. 그동안 점조직으로 꾸려온 지역방위군의 병력 수를 오롯이 알 길은 없으나 민중방위군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들 있다.

2021년 2월1일 터진 군부 쿠데타 후
시민 2892명 피살…1만3680명 투옥
유엔·국제사회 서너달 반짝 관심뿐

전쟁경험 없는 망명 지하정부 NUG
사제무기로 저항 시민군 자극 받아
민중방위군 창설 '반독재 투쟁' 깃발

실질 동력 30여개 소수민족무장조직
이기적 독자노선 치명적인 장애물로
무장조직·NUG 불신감 뛰어넘어야
시민군-소수민족 조직 통합도 숙제


이렇듯 소수민족무장조직과 시민무장조직이 군부와 맞서면서 버마 전역이 내전 상태로 2년째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 무장투쟁 앞에는 넘어야 할 숱한 덫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무장과 전투력을 지닌 소수민족무장조직들의 이기적인 독자노선이 치명적 장애다. 소수민족무장조직의 통일전선이 시급하지만 여태 현란한 말만 날아다녔다.

그 못잖게 소수민족무장조직과 국민통합정부 사이에 도사린 불신감도 큰 걸림돌이다. 그 고갱이는 버마중심주의에 대한 소수민족의 해묵은 반감이다. 국민통합정부가 소수민족무장조직들한테 보답용 돈줄을 흘리면서 초기보다야 나아졌지만 아직도 툭하면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민통합정부는 민중방위군과 지역방위군 사이에서 통합·조정 능력을 키워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고 있다.

하여 반군부 깃발 아래 모두가 싸우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뿔뿔이 흩어진 쓸쓸함이 묻어난다. 시민사회의 마지막 희망인 무장투쟁은 곡두일 수 없다. 적은 40만 정규군을 거느린 61년 묵은 프로페셔널 독재다. 통일전선이 시급한 까닭이다. 버마에 달리 지름길은 없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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