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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훈 문화부기자 |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되면 기자는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이양하 선생의 수필 '신록예찬'이 떠오른다. 겨우내 움츠렸던 식물들이 봄의 따듯한 햇살을 받아 파릇한 잎을 새로 피우면 세상은 어김없이 연두색으로 물들며 생명과 절기의 순환을 몸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잎사귀들의 신록에는 삶을 향한 희망도 서려 있었다. 새 학기와 새 친구들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3월 신록의 이미지는 한 해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 동기를 제공하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신록은 산천을 뒤덮겠지만, 과거 기자가 느꼈던 신록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스스로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신문기자로 살아오면서 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바쁜 세월을 보내온 탓일 것이다.
그러던 중 기자는 2월 문화부 전시 담당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주요 담당 분야는 미술이다. 그동안 특정 통계의 의미나 사건의 인과관계 등을 주로 파악해 왔던 기자에게 미술은 어려운 주제로 다가왔다.
때마침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이는 대구미술관의 '웰컴 홈: 개화(開花)'전(展)이 지난달 21일 시작됐고 취재에 나섰다. 근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지만, 거장의 작품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특히 대구와 인연이 깊었던 이중섭 작가의 '은지화(銀紙畵)'를 보면서 6·25 전쟁 당시 대구에서 전선문화(戰線文化)를 꽃피웠던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면면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이건희 컬렉션을 감상하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이미지'를 볼 수 있고, 보려고 하는 감성의 회복이었다. 과거 봄이 선사하는 '신록'에 감동 받았다면, 거장의 작품세계 속에 깃든 인간사와 작가의 고뇌를 엿보며 지금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선뜻 외출을 결심하기 힘든 요즘, 가까운 미술관과 갤러리를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굳이 거장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 아니어도 좋다. 친구, 연인, 자녀 혹은 부모님을 모시고 잠깐이나마 시각적 탐구와 유희를 즐기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고물가, 고금리, 경기불황 등 팍팍한 삶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긴 힘들겠지만, 1년에 단 하루라도 '미(美)'에 대해 갈망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임 훈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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