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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직도, 여전한 무중력 공간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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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시인〉

오랜만에 낯선 거리를 걷다가 공중전화부스 수화기를 들었다. 왠지 수화기를 들고 30여 년 전 좋아했던 그 누군가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었다. 한때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던 공중전화부스는 휴대폰 대중화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작년 5월경 뉴욕시의 마지막 공중전화부스가 철거되는 장면을 뉴스에서 봤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곧 공중전화 대신 와이파이 키오스크가 보편화된 거리를 상상해 보게 된다. 물론 대구 범어도서관 앞 '5분 도서관'처럼 책으로 채워진다면 이색적인 활용도 가능하겠지만.

유년 시절, 필자에게 공중전화부스는 마법의 공간 다름 아니었다. 아마도 80년대 중후반 텔레비전을 통해 봤었던 영화 '슈퍼맨'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평범한 인물을 아주 특별한 능력 가진 자로 변신하게 했다. 필자 또한 슈퍼맨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마법 상자에서 결의에 찬 눈빛으로 슈퍼맨을 흉내 냈던 모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좋아했던 그룹 015B의 대중 히트곡들은 친숙한 멜로디와 가사의 디테일이 인상 깊었다. 특히 1집의 '텅빈 거리에서'는 지금도 애창곡이다. 공중전화부스 속을 맴도는 애절한 목소리, 가사 속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은 무엇보다 화자의 전하지 못한 마음을 형상화했다. 90년대에 도래한 삐삐(무선 호출기) 시대에서 공중전화는 설렘과 고백, 이별의 아카이브로써 그 낭만적인 기록들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그 시절 직간접 경험을 좀 더 보태자면, 몰래 부모님께 공중전화하다가 군대 선임에게 기합받기도 했고, 수화기를 붙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는 공중전화부스에서 그리움을 전했고, 때론 인생의 쓴맛을 삼키기도 했다.

이병률 시인의 '슬픔이라는 구석'이란 시에서는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빈 공중전화부스 한 대를 설치해 두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통하지도 않는 전화기를 들고/ 세상에는 없는 사람에게 자기 슬픔을 말한다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여전히 필자에게 공중전화부스는 공중처럼 무중력 공간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시간을 건너, 공간 너머,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리운 누군가를 향해 전화기를 들면 왠지 슬픔을 들어줄 것 같다. 참, 요즘은 대략 기본요금 70원에 대략 40초(휴대폰 발신 시)란 사실이 낯설다. 카드보다 동전이 떨어졌을 때의 그 두드림은 아직도 설레기만 하다.권기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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