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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
대부분의 중년남자처럼 나도 그렇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피곤하다. 공기가 탁한 탓인지 입장하자마자 눈부터 뻑뻑해진 것 같고 화려한 상품들이 '이래도 안 살래'라고 구매를 강권하는 것 같아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멀쩡한 허리도 뻐근해지고 자꾸 걸음이 뒤처진다. 반면 언제 가더라도 전통시장 구경은 재미있다. 시래기가 널린 채소전, 물기로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어물전이라도 어린이처럼 신나서 활보하게 마련이다.
어릴 때, 겨울 초입에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을 해서 겨우내 먹었다. 그게 푸성귀가 나는 이 무렵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 겉절이 김치나 물김치를 사나흘에 한 번씩 담는 것이 모든 주부의 일상이었다. 요즘은 한여름에도 김치를 자주 담을 일이 없다. 냉장고에 있는 김장김치를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냉장고를 열어 보면 언제 산 지도 모를 고등어가 있고 삼겹살도 있다. 냉동만두와 신문지에 싸둔 배추도 꺼내기만 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르겠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대형마트로 차를 몰고 가서 싸고 질 좋은 육고기며 생선, 과일을 상자째 사고 집집마다 몇 대씩 있는 냉장고에 두고 오래 먹게 되었으니, 거의 매일 동네 시장이나 골목 가게에서 일용할 양식을 사던 일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냉장고와 자가용이 장보기를 골목에서 대형마트로 옮겨가게 만든 셈이다.
출퇴근길, 법원 앞 집회대열이 하나 더 늘었다. 대형마트 의무휴무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옮긴 홍준표 대구시장의 조치를 규탄하는 사람들이다. 애들 학교 급식을 그냥 주자는 속칭 무상급식도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지만, 끝까지 거부한 곳이 이 동네였던 사실을 곱씹어보면 전국 최초로 시도된 대형마트 의무휴무일 변경은 이례적이다. 시대 변화에 태무심하던 대구가 남들이 않던 일을 먼저 벌여 전국적 관심사가 되니, 시정구호 '파워풀'은 절대 빈말이 아닌 것이다. 장 보러 가면서 "혹시 오늘 휴무일 아닌가?" 하면서 급히 인터넷을 찾아보던 경험을 상기하면 시민들의 불편 하나가 해소된 건 맞다. 하지만 왠지 마뜩지 않다. 쉴 것을 법률로 강제한 이유는 영세 상인을 거대 유통회사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다. 약자를 지키는 조치를 무력화하는 방안이 하나씩 나오는 걸 막으려면 결국에는 집집마다 있는 냉장고의 대수를 제한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될까 싶기도 하다.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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