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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 에드워드 의자의 돌

2023-05-11

[기고] 성 에드워드 의자의 돌
이현희 (영남새마을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철학박사)

영국 국왕 대관식 때 등장한 무게 150㎏의 붉은 사암, 소위 '운명의 돌(Stone of the Destiny)'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6일 오전(현지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새 국왕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치러졌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이후 70년 만에 열리는 대관식이다. 찰스 3세는 2.23㎏의 왕관을 쓰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음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대관식 때 찰스 3세가 앉은 '성 에드워드 의자'는 1300년에 떡갈나무로 제작됐다. 의자 하단부에는 빈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 바로 운명의 돌이 놓인다. 결국 운명의 돌 위에 새로운 국왕이 앉는 셈이다. 대관식에서 돌을 이렇게 사용하는 기원이 궁금해진다.

운명의 돌은 원래 스코틀랜드 국왕의 왕권을 상징한다. 9세기 초부터 스코틀랜드 대관식에서 쓴 거로 알려져 있는데, 1296년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가 전리품으로 빼앗아 왔다. 대관식 의자는 이 돌을 깔고 앉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다. 정복한 스코틀랜드를 깔고 앉음으로써 '영국의 왕'이라는 정복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일 듯하다. 운명의 돌은 1399년 헨리 4세 대관식 때부터 쭉 사용돼 오다 1996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에 영구 반환됐다. 다만 대관식이 열릴 때만 잠시 빌려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았다. 특히 개화기 전후를 비롯해 36년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반출돼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2011년 영구 대여라는 형식으로 전권이 반환됐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 일제 강점기 약탈당한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의 덴리(天理)대학의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운명의 돌처럼 있던 자리로 보내 줬으면 한다.

문화재는 단순히 오래된 물건이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이자 정체성이며 그 나라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또한 발자취를 돌이켜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유산이다. 아직도 국내로 반환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는 전 세계에 무려 12만점이나 된다. 다시 가져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번 찰스 3세 대관식 때 쓰인 운명의 돌처럼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장엄한 대관식 뒤에 가려진 패자의 역사는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정복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통이라는 이유로 선조의 문화유산을 깔고 앉는 대관식을 지켜보는 후손의 마음은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현희 (영남새마을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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