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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산책하듯 떠나요-'대구 진밭골' 미동도 없이 고개 드는 저수지의 평온…시간을 멈춰 세운 풍경이 바람에 흩어진다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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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수지 산책로 주변은 온통 샤스타데이지다. 대덕지를 가로지르는 수상 데크 길 건너 왼편의 산자락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샤스타데이지 흐드러진 '범어천 발원지'
대덕지 동편 산자락엔 힐링과 명상의 숲
황토포장길·편백 숲도 아늑하게 펼쳐져

등 뒤로 도시의 높다란 아파트들을 멀뚱히 세워두고 샤스타데이지가 뽀얗게 피어난 제방을 사선으로 오른다. 동화처럼 원피스를 차려입은 아가씨가 카메라를 세워둔 채 꽃 속에 안기고, 제방 위를 산책하던 노인과 강아지가 우뚝 한마음으로 꽃을 본다. 잠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장면이 산들, 가벼운 바람에 흩어진다. 어깨 위에 쌓인 한낮의 후덥지근한 햇살을 탁탁탁 털어내며 제방 위로 오르면, 앙증맞게 웅크리고 있던 대덕지가 미동도 없이 고개를 쓱 든다. 골짜기를 넉넉히 담은 푸른 저수지의 평온이 산에서 온 그늘진 바람과 숲의 냄새와 뒤섞여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이곳은 대구 진밭골의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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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면 구불구불 오르내리는 숲길이다. 산림욕장에는 치유의 숲과 시동산, 운동시설, 야외무대가 있고 곳곳에 벤치와 정자, 평상 등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덕지와 진밭골 산림공원

남쪽에는 병풍산, 북쪽에는 대덕산, 서쪽에는 용지봉이 솟아 있다. 세 개의 산줄기가 나지막이 손잡고 만든 4㎞의 긴 골짜기를 진밭골이라 한다. 물기를 머금은 질척거리는 땅이란 뜻이다. 골짜기에는 진밭골과 가락골 두 개의 부락이 있는데 약 400년 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피해 숲으로 들어온 경주최씨와 전주최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진밭골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깊은 곳, 해발고도 490m 즈음부터 물길이 시작된다. 물길은 이전지(진밭못)를 이루었다가 천천히 서북방향 골을 타고 내려와 대덕지로 흘러든다. 지금 두산오거리에서 어린이회관 사이를 흐르는 범어천의 원래 발원지가 바로 진밭골이다.

가벼운 옷차림의 몇몇 사람들이 물가를 걷고 있다. 제방 위의 정자는 먹거리를 잔뜩 싸 들고 소풍을 나온 소녀들이 차지했다. 저수지 서편에는 깊은 골짜기로 향하는 도로가 무성한 가로수들과 함께 멀어진다. 도로에서 저수지로 미끄러지는 사면은 온통 샤스타데이지다. 꽃무리들로부터 부드럽게 휘어지는 산책로는 물 위를 가로질러 동편의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나지막한 산자락은 공원이다. 기존의 수림대를 최대한 활용한 순환형 산책로와 소나무 숲을 이용한 '힐링 숲'이 있고, 진달래 군락과 벚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명상의 숲'과 황토 포장길, 자두나무 숲, 편백나무 숲, 철쭉류 군락지 등이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난다. 이팝나무 꽃 아래에는 소녀와 젊은 엄마가 서 있다. 휘어지는 길의 정자에는 부부가 토론 중이다. 늘어선 운동기구들은 햇살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다. 편백나무 숲의 그늘 짙은 벤치에 낯빛이 맑은 중년의 여인이 눈을 감고 누웠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자유롭게 내버려 둔 맨발이 데이지 꽃잎처럼 깨끗하다. 온갖 새소리 속에서 자글거리는 걸음에도 움찔하는 일 없이 그 말간 볼이 얼마나 만족스럽게 부풀어 있던지. 세상에 둘도 없이 태평스러운 휴식을 본 것 같다. 먼 데서 소녀들의 거칠 것 없이 방자한 웃음소리가 물 위를 날아와 숲속으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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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스타데이지가 뽀얗게 피어난 제방을 오르면 아담한 대덕지가 펼쳐진다. 이곳이 진밭골의 입구다.

◆진밭골길과 산림욕장

숲속 오솔길을 따라간다. 진밭골 야영장 이정표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진밭골길'이다. 대구 수성구에는 '생각을 담는 길'이 있다. 수성구 고산지역 금호강과 지산범물 지역 진밭골을 잇는 둘레길이다. 전체 6개 코스가 조성되어 있는데 '진밭골길'은 그중 하나로 대덕지에서 백련사 입구와 산림욕장을 거쳐 수성구 청소년수련원까지 약 4.2㎞ 이어진다.

숲길도 있고, 데크 길도 있고, 계곡을 건너지르는 징검다리도 있고, 계곡을 뛰어넘는 무지개다리도 있고, 돌탑도 지나고 밭도 지나고 쉼터도 만난다. 진밭1교를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는 사이 진밭2교에 닿는다. 다리 앞에 있던 가락산장이 사라졌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접어든 숲길에서 대룡폭포를 본다. 폭포 저 위로 도롯가의 커다란 건물이 내려다보고 있다. 곧 백련사 입구다. 백련사로 가는 작은 다리인 가락교가 오른쪽으로 가지를 뻗어 무성한 숲으로 사라진다. 이곳이 이 골짜기의 부락 중 하나인 가락골이다. 이름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없지만 '계곡이 아름다워 가곡으로 불리다 가락골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부터 진밭골길은 도로 옆 숲 그늘에 바짝 매달려서 간다. 하늘이 보다 활짝 열리고 계곡은 저 아래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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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청소년수련원 뒤편의 산림욕장 입구. 현재 길과 정자 등의 보강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걷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진밭3교 앞, 길가에 몇 대의 차들이 서 있는 곳이 진밭골 산림욕장 입구다. 돌계단을 조금 오르면 아주 가파른 데크 계단이 사다리처럼 산을 오른다. 잠시 후 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면 구불구불 오르내리는 숲길이다. 산림욕장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득한 치유의 숲과 시(詩)동산, 운동시설, 야외무대가 있고 곳곳에 벤치와 정자, 평상 등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정자와 벤치마다 사람들 소리 경쾌하다. 등산로 주변은 야생화 군락지라고 한다. 원추리, 초롱꽃, 무늬둥굴레 등 14종의 야생화 7천여 본이 심어져 있고 대부분 7~8월에 활짝 꽃을 피운다. 집열판처럼 따끈해진 이마를 손등으로 찍어낸다. 팔을 휘저어 바람을 일으키자 가슴에서 쉭쉭 소리가 난다. 호흡에 맞춰 늑골과 횡격막이 오르내린다.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실리는 체중에 엄지발가락이 불끈 힘을 내고 허벅지의 근육이 움찔거린다. 팔꿈치 안쪽의 엷은 피부 아래의 대정맥이 강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씩씩하게 걸은 모양이다.

청소년수련원의 뒷모습이 보인다. 마을에는 커다란 카페가 들어서 있고 이전지 옆에는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마을 가운데 간판 없는 작은 카페에서 음료를 사 들고 나와 휘 둘러본다. 진밭골에 대한 아주 오래된 기억은 장작 타는 냄새와 밥 냄새다. 뿔 달린 소가 착하게 눈을 껌뻑이던 모습이고 검붉은 볏을 세운 닭이 새침하게 걷던 일이며 이전지 주변에서 하늘거리며 햇살을 받던 갈대들이다. 그리고 길섶 그늘을 골라 내려앉던 꽁지가 붉은 새들과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 오던 노인이다. 이제 다시 이 기억을 꺼낼 일이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수성구 범물동 동아백화점 지나 용지네거리에서 직진하면 된다. 대덕지 제방 아래에 커다란 공영주차장이 있다. 그곳이 버스 814번 종점이고 진밭골 입구다. 제방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오르면 대덕지다. 진밭3교 앞 왼편에 산림욕장 입구가 있다. 길가에 자동차 서너 대 정도 주차 가능하다. 청소년수련원 뒤편으로 산림욕장에 진입할 수도 있으나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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