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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10년 전의 방관자들이 변했습니다

2023-06-01

최근 아동학대 신고의 증가
2013년 경북 칠곡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계기
사회반성 바탕 신고규정통해
용기 낸 신고자로 변화케 해

[더 나은 세상] 10년 전의 방관자들이 변했습니다
정혜진 변호사

형사 사건 변호인으로 일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지나면서 체감으로 크게 느끼는 형사 사건의 변화 중 하나는 아동학대 사건의 증가이다. 처음 형사 변호인을 할 때는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아동학대 사건이 요즘에는 반갑지 않은 단골손님처럼 종종 들어온다. 아동학대 사건이 늘었다는 건 학대 자체가 증가했다기보다는 학대가 '사건화' 되는 경우가 많아진 영향으로 생각된다.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욕설이나 차별 같은 정서적 학대, 과한 무관심 같은 방임 등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행위의 범위 자체도 넓어지고, 과거에는 그저 '집안일'이라고 여기며 범죄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주변에서 아동학대 의심 사건을 신고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계기는 10년 전인 2013년 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었다. 아홉 살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다 숨졌는데 열두 살 친언니가 자신이 동생을 때려 죽게 했다고 자백한 이상한 사건. 하지만 수사 결과 아이들 새엄마의 심한 학대로 아이가 숨졌으며 새엄마가 열두 살 아이에게 '동생을 내가 죽였다'고 말하게 시키기까지 했던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사건. 2019년에 개봉된 '어린 의뢰인'은 그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학교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악의 없는 방조자들'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집에서 학대받는 정황을 짐작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도, 아동보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부모를 학교로 불러 상담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용기 내어 도움을 요청하려 했을 때 선생님은 마침 개인적인 일로 바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가 정작 나중엔 그 일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서 고막 파열로 쓰러지고서야 선생님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이가 평소 의지하며 도움을 기다리던 '아저씨'(주인공 변호사)에게 연락해 제발 아이들을 도우러 와 달라고 절박한 부탁을 한다.

그땐 우리가 다 비슷한 방관자였다. 옆집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비명에 "저 집 또 시작이네" 하던 이웃처럼, 엄마한테 맞았다는 아이들의 신고에 "엄마한테 한 대 쥐어박혔다고 신고나 하고, 요즘 애들 무섭다" 하던 경찰들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야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애가 너무 불쌍하다고 변명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꼭 그 선생님 같았다.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14년에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이 제정되었다. 법에서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의심 사건을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교사 등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범죄를 알 수 있는 일부 직군에는 신고 의무를 두었다.

다른 여타 범죄 신고와 마찬가지로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데에도 당연히 두려움이 따른다. 학대신고의무자 신변 보호가 제도화되어 있지만 혹여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다, '내가 괜한 간섭을 하는 건 아닐까' '내 신고로 아이가 부모와 분리되면 그 아이에게 바람직할까' 하는 걱정까지 든다. 하지만 신고 규정은 악마 같은 학대자뿐 아니라 딱히 악하지 않은 수많은 방관자도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우리 사회의 반성으로 만들어졌다. 10년 전 방관자에서 변화되어 용기를 내고 있는 신고자들 덕분에 아동학대 사건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아동학대 자체가 사라져서 신고 규정이 무색해지는 때가 와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동학대 사건 증가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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