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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퍼머컬처란 무엇인가

2023-06-09

지속가능한 농업,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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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산업자본주의와 과학기술에 힘입어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편리한 삶의 대가는 무분별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인수공통감염병인 코로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숲을 없애고 생물 다양성을 훼손한 결과,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전염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석연료의 과다사용과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 등으로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집중호우, 폭설, 한파,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로 지구환경은 물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인류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생존 문제이다. 인류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현재와 같은 문명을 누리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퍼머컬처(Permaculture)가 그 대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퍼머컬처는 '영속적'이란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이 말은 1970년대 말 호주 태즈메이니아 대학의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홀름그렌 교수가 처음 쓰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자연생태환경과 농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영속농업을 통한 자연생태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어떤 문화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문화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퍼머컬처를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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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퍼머컬처를 주창한 빌 몰리슨은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에서 태어났다. 한때 사냥꾼이자 어부이기도 했던 그는 단일 재배를 선호하고 살충제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형 농업이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고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며 한때 비옥했던 토양을 침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환경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자각 아래 몰리슨은 퍼머컬처 활동을 시작했다. 몰리슨에 따르면, 퍼머컬처의 목적은 '지구를 숲으로 덮는 것'이다. 우리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는 숲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 숲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을 사는 것이 퍼머컬처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농약 없이 땅의 힘 북돋워 농사짓고
자연 섭리에 따라 생활하는 삶의 방식
텃밭·정원 가꾸기 등 자연회복 활동
일상서 자연 지켜낼 수 있는 일 실천
문화 포함 삶의 모든 분야로 확대 적용


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퍼머컬처는 다분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라 그 내용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몰리슨과 홀름그렌은 퍼머컬처에 관한 세 가지 윤리와 열두 가지 원칙을 제안하였다.

세 가지 윤리란 지구에 대한 배려(Care of the earth), 사람에 대한 배려(Care of the people) 및 잉여물의 공유(Fare share)를 말한다. 사람은 지구 없이는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지구 환경을 배려하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며, 타인으로부터 빼앗지 말고 남는 물자는 서로 나누라는 것이다. 지구와 사람을 돌보고 남는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어 쓰는 것이 퍼머컬처 윤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몰리슨과 홀름그렌은 퍼머컬처를 위한 열두 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1. 관찰하고 상호작용하라 2. 에너지를 수집하고 저장하라 3. 생산물을 얻어라 4. 자기 규제(규율)를 확립하고 교훈을 얻어라 5. 재생가능자원을 재사용하고 가치를 높여라 6.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라 7. 자연의 패턴을 적용해 디자인하라 8. 작은 것에 주목하고 느린 해결책을 찾아라 9. 자연의 섭리를 이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라 10. 끊임없이 배우고 적응하라 11. 지역 사회와 협력하라 12.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를 위해 계획하라. 이 원칙들은 퍼머컬처를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세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농업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행위'나 '경제활동'으로 좁게 보았다. 그러나 인류가 농사를 짓는 행위는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이나 경제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지역공동체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며, 생물의 다양성과 경관을 보존하는 등 농업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전승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퍼머컬처는 농업이 가지는 다원성에 주목하고, 이를 확대·발전시켜 농업을 자주적·주체적·자연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 보고 있다. 인류에게 농업이 최초의 문화 활동이었듯이 농업은 본질적으로 문화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농업을 영속적인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퍼머컬처센터저팬(PCCJ)은 "지속 가능한 농업을 바탕으로 영속 가능한 문화, 즉 사람과 자연이 함께 풍요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디자인 기법"으로 퍼머컬처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퍼머컬처의 핵심을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퍼머컬처는 원래 농업을 위해 개발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단순히 농업만을 대상으로 삼는 좁은 의미의 운동이 아니다. 비록 농업에서 시작했지만 퍼머컬처는 농업이 가지는 영속성 혹은 지속가능성을 문화를 포함한 삶의 모든 분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퍼머컬처가 적용되는 분야를 예로 들면, 농업, 원예, 건축 및 생태학뿐만 아니라 경제 제도, 토지와 산림의 접근과 이용 및 비즈니스를 위한 법제도 등 상당히 폭넓은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텃밭과 정원을 디자인하고 가꾸는 데서부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시각에서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경제적·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시스템을 만드는 데 퍼머컬처를 활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퍼머컬처는 인간의 생활 전반을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전환하도록 새롭게 디자인하는 사회대변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퍼머컬처는 자연의 섭리를 깊이 관찰하고 성찰하여 이를 농업과 문화를 비롯한 삶의 전 과정에 적용하여 우리의 고정관념과 생활방식을 새롭게 설계하고 바꾸는 것을 철학의 기초로 삼고 있다. 텃밭농사를 그 예로 들면, 우리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행위는 사실 삶에서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행농법을 따르지 않고 화학비료를 뿌리거나 농약을 치지 않고 땅이 가진 힘을 북돋워 자연생태농법으로 채소를 키워 먹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구를 지키고 기후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한 이론이나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일을 실천해 나간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서서히 본래의 자연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 그리고 다른 생명들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퍼머컬처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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