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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12만년 만에 가장 뜨거운 지구에서의 '적응'

2023-07-27

'적응'은 수동적 순응이 아닌

폭염·유례없는 규모 태풍 등

경험하지 못한 날씨에 대한

대비를 '일상에서' 해내는 것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시대

[더 나은 세상] 12만년 만에 가장 뜨거운 지구에서의 적응
정혜진 변호사

지난 몇 년간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에어컨 없이 여름을 무사히 보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에 에어컨 없이'다. 이렇게 말하면 에어컨 없는 집에서 어떻게 이 무더위를 견뎠냐고 놀라거나 타박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낮에는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 나오니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견디는 정도다. 열대야가 계속될 때면 좀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두렵다. 중복(中伏)을 지났을 뿐이니 여름이 아직 절반은 남았는데, 긴 장마 후 본격화될 폭염이 슬슬 걱정이 된다. 미국의 한 기상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올해 7월 지구 온도가 12만년 만에 가장 뜨거웠고, 이제 시작일 뿐이란다.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앞으로 더 강해지면서 지구촌 더위 기록은 계속 경신할 것이라고 한다.

20여 년 전 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던 시절, 기후변화를 화두로 삼아 세계 도시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도시도 국가 차원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대책을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 두 방향으로 마련하는데 그때 나의 관심은 완화에 치우쳐져 있었다. '완화'란 지구온난화의 원인 물질을 감축해 온도 상승을 늦추는 걸 의미하는데, 나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완화 정책을 주로 취재했다. 반면 '적응'이란 이미 상승한 온도와 그로 인한 기상이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의미하는데, 예컨대 더 잦아지는 산불, 폭우, 가뭄, 폭염이나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정책을 말한다. 내가 '적응'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건, 기후변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인 '완화'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 탓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인프라가 구축된 도시에서는 적응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던 까닭도 있었다. 어리석었던 건 나만은 아니었다. 초창기 '적응'에 대한 논의는 기후변화 영향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적응 정책을 강조하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포기하는 인상마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극한 날씨'가 일상화되면서 개발도상국이건 선진국이건 가리지 않고 적응이 중요한 기후변화 정책이 되고 있다. 특히나 지자체 차원에서는 더 그렇다. 완화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손에 딱 잡히는 이슈가 못 된다. 기후변화 문제가 한 도시의 문제도 아니고 한 국가의 문제도 아니고 인류 전체의 문제이자 전 세계적으로 책임이 있는 문제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따른 적응은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생존의 문제이기에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적응'은, 우리 말 어감과는 달리, 에어컨 없는 집에서 어떻게 견딜 것인가 하는 정도의 수동적인 순응이 결코 아니다. 40℃가 넘는 폭염, 유례없는 규모의 태풍 등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씨에 대한 대비를 '일상에서' 해내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대비하기도 어렵지만 그걸 해내야 하는 시대다. 극한 폭우로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것과 같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시나리오를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걱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고, 언론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적응 정책을 감시해야 하는 일이 '적응'이다. 우리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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