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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하<작곡가>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 좋고 열매 많으니…"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의 한문 번역 가사에 선율을 붙여서 음악을 만들었고, 그 곡의 제목은 '여민락(與民樂)'이다.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인데, 제목부터 백성을 염두에 둔 임금의 지혜가 엿보인다.
"세종대왕이 작곡까지 했다고?"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음악에 능통했고 여민락 외에도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작곡하였다. 보태평은 조선왕조의 학문적 업적을 찬양하는 곡이고, 정대업은 왕조의 무공을 찬양하는 곡이다.
세종은 예악(禮樂) 사상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려고 했다. 공자의 '논어'에 의하면, 예(禮)는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범 형식이고, 악(樂)은 '예'를 보완하여 조화롭게 만드는 수단이다. 사람이 음악을 잘 즐겨야 조화로운 심성으로 예(禮)를 실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禮)와 악(樂)의 균형은 개인의 인격완성이나, 인간사회의 화평과 질서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종은 '바른 음악이 백성의 마음을 순화시켜 주고 나라를 이롭게 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율법과 음악 원리를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았다.
우리 전통음악은 크게 정악(正樂)과 민속악(民俗樂)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악은 궁중음악과 양반의 음악, 민속악은 서민의 음악으로서 정악을 제외한 나머지 음악이다. 세종이 작곡한 여민락, 보태평, 정대업 등은 모두 궁중음악이다. 정악에는 궁중음악 외에도 정가(正歌)라고 하는 것이 있다. 시조, 가곡, 가사 등이 이에 속하며, 양반이 부르는 노래곡이다. 판소리, 농악, 산조, 민요 등은 민속악에 속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그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했고, 순우리말로 옮기자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정음(正音), 정악(正樂), 정가(正歌) 등의 이름에 모두 '바른'이라는 형용사가 포함되어 있다. 임금과 양반들은 바른말, 바른 음악, 바른 노래를 통하여 조화로운 마음을 갖추고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 그 지위에 맞는 품위와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세상을 요구한다.
한글날을 지나면서 음악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에게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 본다. 여민락(與民樂)이 노래하는 세상,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좋은 사회를 꿈꾸며…. 박철하<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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