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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다.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비밀을 잘 숨기지만 어린이의 비밀은 대체로 잘 숨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 문해력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아이의 비밀이 생각난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아직까지 스스로 책을 잘 읽지 못한다. 한글을 배웠지만, 겹받침이나 이중모음이 포함된 단어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께서는 종종 한 사람을 지목해 책 읽기를 시키신다. 아이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했다. 혹시나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이름이 불리고 말았다. 일어나 책을 읽었는데, 더듬더듬 읽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수군거리고 비웃는 것 같았단다.
초등 4학년인데 왜 아직 책을 잘 읽지 못할까. 그것은 이 아이가 경계선 지능인(IQ 71~84·지적장애와 평균 지능 사이의 인지능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계선 지능인이 책을 잘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아이는 언어 이해 능력이 낮고, 시각적 주의 집중의 어려움이 있어 한글을 배우는 것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친구와 선생님에게 들켜서 속이 상했던 것일까. 나는 그림책 한 권을 가져왔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글 작가 '이시즈 치히로'의 '나의 비밀'이라는 그림책이다.
"있잖아, 난 철봉을 잘 못해." "하지만, 담장 위에서는 고양이처럼 잘 걸을 수 있어."
혼자 알고 있는 자신의 비밀을 용기 있고 사랑스럽게 말해 주는 책이다.
한 어린이의 목소리로 "있잖아"와 "하지만" 두 단어가 반복된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번갈아 가며 말한다. 혼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는 것 같다. 사실 그 비밀은 자신의 단점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장점이다.
"있잖아, 난 더하기 빼기를 자꾸 틀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그림은 잘 그릴 수 있어."
아이의 시선은 이 페이지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책을 다 읽고 아이와 헤어질 시간. 아이는 나에게 와서 속삭였다.
"선생님, 비밀인데요. 저 책은 천천히 읽어도 랩은 엄청 잘해요."
지능만을 기준으로 아이를 평가한다면 이 아이는 분명 대부분 영역에서 부족하다. 하지만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문제'가 아닌 아이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정해 준다면 그 너머에 반짝이고 있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자신의 비밀을 용기 있게 말해 준 아이가 참 멋졌다. 다음에는 아이에게 랩을 꼭 들려 달라고 해야겠다.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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