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31112010001508

영남일보TV

  • 유영하 국회의원 대구시장 출마선언 “대구의 내일을 여는 길, 함께 해주시길...”
  • 경주시 문무대왕면 산불, 재발화 진화… 잔불 정리 지속

[문화산책] 당신은 어떤 색과 무늬가 있나요

2023-11-13

김혜진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선생님 잠시만요. 메모 좀 할게요."

이 중학생 남자아이에게 무엇이든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평소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는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경계선 지능이다. 그래서 주의를 집중하거나 충동성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깜빡할 때가 있어 곤란한 상황들이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이 아이는 누구보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과제를 잘해내고 싶었다. 또한 친구들과도 약속에 늦지 않게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메모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파랗고 빨갛고 투명한 나'라는 그림책 한 권을 읽었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거치면서 반드시 겪게 되는 순간순간을 색과 모양으로 이야기한다. 여기 작은 동그라미 여러 개가 있다. 동그라미에게 파란색 꿈이 찾아온다. 동그라미에게 파랑을 남겼지만 똑같은 파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빨간색 열정이 찾아온다. 동그라미에게 빨간 흔적을 남겼지만 다 똑같은 빨강은 아니었다. 검은색 갈등도 투명색인 상상도…. 이렇게 여러 가지 색은 동그라미에게 무늬의 흔적을 남긴다. 동그라미마다 다 다른 흔적들이 남겨진다.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잘해내고 싶은 열정은 어떠한 색으로 다가왔을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소망은? 중요한 정보를 기억하고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 겪었던 수많은 곤란한 상황들은? 혼자 있는 시간 수없이 했던 상상들은 과연 어떠한 색들이었을까? 이 아이의 삶에서 마주한 열정과 소망, 갈등과 상상들은 다양한 색으로 지금의 존재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만약 아이의 갈등과 좌절의 색이 검은색이라 해도, 아이는 모습이 검은색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열정, 소망, 상상 등 다양한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 지금의 꼼꼼하게 메모하는 아이로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서 만나게 될 여러 순간들이 다양한 색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색과 무늬로 자라갈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져 갈 모든 아이들을 응원한다.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