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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
영국 런던 올드 빅 극장에서는 2017년부터 매년 연말 '크리스마스 캐럴'을 공연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1978년생 작가 잭 쏜이 각색했다. 돈만 좇아 달려왔던 탐욕스러운 스크루지가 깨달음을 얻는 1843년 소설은 1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준다.
공연장에 들어가면 높은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등불이 빛나고 있다. 무대에는 의상을 갖춰 입은 배우들이 관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연주자들이 무대 중앙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동안 객석 한 편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파이를 관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무대는 십자형으로 무대 중심을 볼 수 있도록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가 객석 3층 발코니까지 올라가 무대에 있는 배우와 대화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면서 3층에서 음식들을 내려보내고, 어린이 관객을 불러내 파티 음식을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스크루지가 객석에 내려와 관객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극장 전체에 하얀 눈이 내리는 등 반짝이는 재미로 2시간을 가득 채운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변화한다.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며 잊었던 꿈들을 떠올릴 때, 사랑했지만 떠나보냈던 연인을 다시 만나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악수를 할 때, 관객들은 스크루지와 함께 눈물을 훔친다. 뉘우치고 화해하며 모든 것을 끌어안는 행복한 결말이다.
2021년, 17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를 조사했는데 14개국에서 가족을 1순위로 뽑았지만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돈을 꼽았다고 한다. 올 한 해도 부지런히 달려온 분들에게 가족과 함께 잠시나마 다른 세상, 극장에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공연에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두 시간 남짓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내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
공연이 끝날 무렵 스크루지 역 배우가 찰스 디킨스의 정신을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자선 단체에 기부하도록 독려한다. 전 출연자와 연주자가 핸드벨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하며 공연이 끝난다. 관객들은 공연의 여운 속에 천천히 퇴장하면서 출구에 마련된 자선냄비와 카드 리더기에 자연스럽게 기부한다. 이 작품 연출가이자 올드 빅 극장의 예술감독인 매튜가 말한 것처럼 "연극은 즐거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임에 틀림없다.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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