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0일 영남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본심에서 심사를 맡은 정호승(왼쪽)·신용목 시인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
시의 언어는 전달 가능성과 전달 불가능성 사이를 오간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언어의 운명이기도 하다. 시는 '정보'의 도구로 전락한 언어를 '선언'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선언이라면, 시는 교환되기보다는 제출되는 것이며 그로써 한 사람의 생을 증언하는 유일한 목소리가 된다. 인생은 정보의 틈 사이로 희미하게 멀어지거나 그 틈 사이에서 반짝이는 신비를 통해서만 인간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언컨대, 시 말고 다른 언어로 쓰여진 삶이 인생일 리 없다. 그렇다면, 모든 인생은 인간의 육체로 쓰는 시인 셈이다.
그것이 심사자들이 '미싱'을 젤 위에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사라질 것만 같은 쵸크 선을 따라" 엉킨 실을 풀기도 하고 매듭을 새기기도 하며 "몸에 맞는 옷"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은 언제나 헌것이라 옷보다 따뜻한 것일까"라는 놀라운 질문은 "눈발이 창에 드문드문 박음질"하는 풍경과 맞물려 인간이 쓸 수 있는 서사시의 숭고한 첫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물었던 개가 죽었다/ 내가 더 강해지기도 전에"로 시작하는 당선자의 또 다른 시 '이사'도 그렇거니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문장에 밴 섬세한 시선 덕분에 심사자들은 일찌감치 당선자를 결정한 뒤 당선작을 고르는 기쁜 고심을 누릴 수 있었다. 당선자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본심에서 함께 검토한 '당신에게 맞는 온도'는, '건강함'이란 말로 설명되는 시들이 대체로 무거운 시어를 통해 세계의 원리를 포착하려는 과욕을 쉽게 노출하는 데 비해 평이하면서도 진솔한 언어로 아픈 어머니를 씻는 아버지의 지극한 일상을 깊이 감내한다는 점에서 깊은 감명을 주었다.
'판토마임'은 '낯선 매혹'에 사로잡힌 언어들이 자칫 그 매력의 배후를 놓쳐버리고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 대한 반성처럼, 훌륭한 이미지를 구사하면서도 특별한 순간을 가능케 하는 근원에 접근하려는 고투를 멈추지 않아서 반가웠고, '낙하'는 시가 의미 용량으로 해석되는 관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문맥 이면에 도사린 예감을 통해 그 의미를 부드럽게 전복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분명 우리는 이들의 독자가 될 것이다.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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