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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란<소설가> |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해가 지면 트럼펫 연주를 금지한다는 풍문이 있다. 듣다 보면 감상에 빠져 자살할 수도 있어서라는데 영화 '길(원제 La Strada)'의 주인공 젤소미나의 연주를 들으니 과연 그럴 만도 했다.
1957년 국내 개봉작인 펠리니의 이 영화를 2024년 들어서며 다시 보고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압도당했다. 흑백화면 속의 길 위에 선 채 매캐한 흙먼지에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야수 같은 차력사 참파노와 어딘가 모자라지만 한없이 맑고 깨끗한 젤소미나의 캐릭터, 그리고 그들로 분한 배우 앤서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가 끌어당기니 거역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난과 무지에서 비롯된 젤소미나의 불행을 완성한 동력은 그의 순수와 순정이었을 테다. 떠돌이 참파노의 조수로 1만 리라에 팔려 간 젤소미나는 서툴러서 혼쭐이 나고 주눅 들고 그를 무서워하다가 결국은 그를 사랑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들이 문제다. 생존과 감정. 그걸 빼면 사실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다.
영화 초반,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뒤로 한 채 참파노의 오토바이 수레에 실려 황폐한 길 위에 오른다. 그에게는 처음 만나는 외부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길, 길, 길들. 그는 길에서 먹고, 길에서 자며, 길에서 벌고, 길에서 사랑하고, 병들고, 버림받는다.
참파노의 무분별한 여성편력에 절망하고 동료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그의 모습은 우리를 공감의 영역으로 불러들여 넌지시 알려준다. 긴 절망이야말로 인생행로의 본질이며 산다는 건 무작정 수용하기에도 혹은 외면하기에도 녹록지 않은 길이라고. 잠깐의 기쁨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젤소미나는 가장 슬픈 방법으로 그 길을 벗어난다. 어느새 자신을 연민하고 응원하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충격과 절망 속에서 서서히 죽고 마는 것이다. 눈앞에서 참파노의 손에 옛 동료가 죽는 것을 목격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애절한 트럼펫 선율만 남을 뿐이다.
병든 젤소미나를 버렸다가 뒤늦게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참파노가 바닷가에서 오열하는 엔딩은 여운이 길다. 그의 표정이 오래전 보았던 영화 '25시'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졌다. 8년 동안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닌 불행했던 사내 요한 모리츠(앤서니 퀸 분)의 웃는 듯 우는 듯 하염없던 얼굴. 삶이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것이라는 웅변. 한밤의 트럼펫 소리가 몇 가닥 선율로 해치우는 일이다.
이경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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