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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란 (소설가) |
두 사람이 북성로의 낡은 다방에 들어간다. 소파는 한 귀퉁이가 찢어져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 대로 든 다방 주인의 허술한 옷매무새 같다. 둘은 자리를 가려 앉은 다음 차를 주문한다. 오래전 그들의 부모 사이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쓰던 소설은 이 대목에서 멈춘 지 오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인물들이 북성로에 가게 될 줄 몰랐다. 이상한 변명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을 게다. 하지만 왜 동성로가 아니고 북성로일까. 성장기의 대부분을 동성로에 빚진 세대인 내가 무엇 때문에 자꾸 북성로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어릴 때부터 공구 만지는 걸 좋아해서? 버스 안내양의 '오라이' 앞에 자주 붙던 '자갈마당'이 그 지역이고 그곳이 집창촌이라는 사실에 충격 받았던 기억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리싸이틀'을 보러 갔던 삼류극장이 있던 곳이어서?
북성로는 대구성을 허문 자리에 닦은 길이다. 성이 허물어진 건 두 번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때였고, 새로 쌓다시피 보수한 것을 1906년,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일본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허물었다니 분통 터질 노릇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길은 동서남북 4성로 중 가장 성했다. 지금은 북성공구골목, 불고기골목 등으로 특화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번성했던 시절의 영광은 빛이 바랜 느낌이다. 최근에는 이곳도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신축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발견한 예술발전소 건물은 놀라웠다. 연초제조장 별관창고를 리모델링한 곳인데, 1·2층에 자리 잡은 만권당이라는 널찍한 카페가 인상적이었다. 전시회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그곳과 주변의 골목골목에 여전히 건재한 공구상들. 이 불균형과 부조화가 매력의 핵심이 아닐까. 서울의 성수나 문래와 비교하자면 아직은 자본의 때가 덜 묻은 것도 마음을 끈다. 무엇보다도 세월의 영욕이 느껴져 애틋하기 그지없다. 나의 부모와 조부모, 그 이웃들의 영욕이. 시침을 떼 봤자 사실은 그 때문에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것일 테고.
북성로의 낡은 다방에 들여보낸 주인공 두 사람이 그곳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향하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아무래도 다시 가고 자주 가야겠다. 그곳에 가면 정체 모를 그리움과 애잔함 너머 예상 못한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만 같아서. 그것이 혹 희망이란 이름의 막연한 예감은 아닌지. 막 다방에 들어가 앉은 두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놓쳤다고 생각한 길이 거기서부터 다시 이어지기를.
이경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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