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저술 최초 책판 209장…1894년 간행 목판본보다 247년 빨라
"책판 마모와 계선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 어미 모양 등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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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이 최근 발굴한 1647년판 '징비록' 권4의 13장 부분.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
서애 류성룡 선생이 1647년 무렵 저술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이 발굴됐다. 이는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1894년 간행 목판본보다 247년 빠른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류성룡(1542~1607년) 선생이 임진왜란을 겪고 귀향한 후 전쟁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류성룡 선생의 친필 징비록(국보)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기탁 받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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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이 최근 발굴한 1647년판 '징비록' 마구리 부분.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유통된 장비록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에 간행된 목판본(16권본),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1647년 무렵 제작한 책판은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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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청주정씨 정봉진가(家)에서 보관돼 오다 지난 5월 한국국학진흥원으로 기탁된 1647년판 '징비록' 책판. <한국국학진흥원> |
국학진흥원이 이번에 대량 발굴한 이 책판은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1596∼1674년)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때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으로, 경북 문경에서 보관돼 오던 것을 5월 초 청주정씨 정봉진가(家)에서 기탁한 것이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1669~1745년)이 지은 운양잡록(雲陽雜錄)에 수록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현재 국학진흥원에 소장된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한 결과,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는 확연히 다르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당대 판본과 비교한 결과, 책판의 마모와 계선(界線)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魚尾) 모양 등이 일치한다"고 전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징비록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의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이 그 바탕에 있다"면서 "따라서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임성수
편집국 경북본사 1부장 임성수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