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자주 했던 공놀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즐겨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
입시 전략 편차도 우려
불평등 환경개선 답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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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사회부 차장 |
기자는 어렸을 때 '공'으로 하는 운동을 꽤 잘했다. 배드민턴도, 피구도, 농구도. 공을 잘 다루는 것에 자신 있었다. 그건 감각과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스스로 제구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연습도 많이 했다. 특히, 피구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서 공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기술이 중요한데, 거의 실패한 적이 없었다. 운동장은 평평했고, 둥근 공 앞에서 우리는 평등했다. 반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도, 좀 논다는 친구도, 부잣집 친구도 예외가 없었다. 상대가 잠시 틈을 보이는 순간, 내 공은 어느새 그들의 팔이나 등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줄줄이 아웃시켜 나갔는데, 반에서 좀 약한 친구들, 그러니까 성장의 속도 등이 차이가 나서 남들보다 반응이 느린 친구들에게 먼저 공을 던지지는 않았다. 암묵적인 우리의 '룰'이었고, 그게 공정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공놀이는 승패를 떠나 과정 그 자체를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가장 좋아한 스포츠는 야구였다. '9회 말 2아웃' 이후가 있는 멋진 종목. 한 번씩 그런 생각도 했다.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뛰어난 마무리 투수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쩌다 기자가 됐고, 업계 안팎에서 간혹 무례하고 안하무인의 사람을 만날 때면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여기가 야구장이었으면 너는 내 공에 배트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삼진 아웃을 당했을 것이다." 그럼 억울한 마음도 금세 풀린다.
난데없이 공이며, 스포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 몇 달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느라 정말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기자 생활 중 처음으로 교육 파트를 담당하게 돼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중 친한 후배 기자가 책 한 권을 선물해줬다. 그가 선물한 책은 교육 개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교육이나 경쟁에 있어 공정의 개념이 중요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의 잣대를 대면 누가 이길까.'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 그리고 기자가 처한 상황을 잘 진단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 몇 달간 정말 바빴다. 교육을 맡자마자 '의대 증원' 이슈가 터졌고, 사교육 카르텔에다 새로운 교육정책, 글로컬대학 등 각종 사안이 쏟아졌다. 요즘 입시를 잘 모르니 입시설명회에도 여러 번 가봐야 했고, 가끔 정부 부처·교육계 인사들과 부딪힐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느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과거 피구를 하던 그 평평한 운동장이 아니라는 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승패와 우열이 매겨지고 있다는 것을.
입시 정책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전략이 필요하다는데, 그 전략의 크기가 부모의 경제·정보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교육 관련 중요한 정책 정보들은 중앙에서 수합해 지역으로 '내려오는' 식인데, 거기에도 격차가 있었다. 그래서 지역 기자는 한 번씩 서러울 때가 있다. 다행히 난 제구력이 있는 기자다. 후자의 경우, 나 스스로 극복해 보려고 중앙을 향해 직구도, 변화구도 던지며 노력 중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학생들이 서 있는 운동장이 좀 더 평평해지고 따뜻해질 수 있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면서, 언젠가 답을 찾게 되길 바란다.
노진실 사회부 차장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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