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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예술가) |
작업실 자료를 정리하다 아버지의 과거 사진앨범을 잠시 열어보았다. 오래전부터 사진이 취미였던 아버지가 직접 찍고, 찍힌 모습이 담긴 70년대 초중반의 흑백 사진으로 앨범이 가득 채워져 있다.
흥미로워 보이는 사진의 뒷면을 보기위해 보호 비닐을 들추어 반세기 가까이 앨범에 붙어있던 사진을 뜯어본다. 접착력이 모두 소멸되어 다행히도 사진이 찢어지지 않고 깃털같이 분리된다. 사진 뒷면에 촬영 날짜와 장소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던 아버지의 군복 입은 사진 뒤에는 '1971년 11월17일 사이공' 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아버지가 월남에 파병을 간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그 날 무슨 일로 사이공에 있었는지 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다.
예술가로서 신작을 제작하고 있다. 방학때는 더 필사적으로 작업을 하려 하는데 꼭 방문할 장소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짧은 일정으로 베트남에 오게 되었다. 급하게 결정한 촬영 일정을 앞두고 나는 사진 세 장을 부적처럼 촬영 장비에 챙겨 베트남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 방문한 나라지만 나에게는 과거 베트남 풍경이 익숙하다. 앨범에 고이 붙어있어 바래지 않고 잘 남아있는 흑백 사진들과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가져와 중간중간 넣어둔 컬러 엽서들을 보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베트남의 풍경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 22세 젊은 군인이 서 있었던 1971년 11월의 사이공과 지금 내가 서 있는 2024년 8월의 호찌민(사이공)은 53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 그 사진은 나보다 훨씬 어린 청년이 느꼈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 오랜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국가의 어수선함과 지속돼야만 했던 일상이 공존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60~70년대 밟은 땅 베트남, 그들은 중남부 지역을 다니며 명령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들이 찍고 남기고 보관한 당시 베트남 사진에서는 젊은 군인들의 활동과 더불어 뒷 배경으로 자리한 열대 식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한 베트남에 들고 온 그 사진들은 종이 위에 베트남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베트남의 사진관에서 인화한 것이 아니라면 그 인화지들은 실제로는 베트남에 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카메라와 필름을 들고 베트남에서 찍어온 이미지들을 암실작업을 거쳐 인화지위에 고정시킨 것일 뿐이다. 베트남에 대한 나의 기억도 마치 암실작업을 거쳐 만들어진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과거 이곳에 온 적도, 직접 경험하고 본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가 카메라와 필름이 되어 찍어온 베트남 사진 이미지들이 내 기억 속으로 이식된 것이다. 그리하여 53년 전 베트남의 모습을 담고 있는 종이 사진 한 장은 탄생 후 처음으로 혹은 반세기 만에 다시 베트남에 오게 된 것이다.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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