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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자유에게 자유를 주자

2024-09-19

고경아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엄마, 새들은 왜 저렇게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사는 거야. 우리가 걸어서 할머니 집에 가는 것처럼. 서로 존중해야 해."

얼버무리긴 했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자유'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어째서 저 어려운 단어를 다섯 살 아이가 알고 있었지?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무례하지 않게 다가가야 할 무엇이라면, 아이에게 자유는 그저 날갯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필자가 자란 시대는 학교와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야 할 것'에 갇혀 있었다. 오직 공부, 또 공부.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것들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했고 그것들은 쉽게 다룰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그 무거운 시기에 반항하지 않는 것이 자유라는 걸 알았더라면, 숨어 울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늦잠을 자고 아침을 건너뛰고 수업에 빠지기도 했다. 간섭이 느슨해진 틈 속, 울타리 과정들은 좀 멀리 두었다. '자유'라는 어스름한 단어에 이끌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원에는 더 많은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이는 며칠 전보다 훨씬 환하게 웃었는데 자유에게 자유를 준 듯 보였다. 그 밝은 웃음이 부러웠다. 자유에게 선뜻 자유를 주는 일이 아이에게는 별 어렵지 않은 일이구나. 아, 아름다운 아이.

그랬다. 자유라는 것은 내 안에 묶여 있던 것들을 풀어 놓아야만 누릴 수 있었다. 이리저리 복잡한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허락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억지로 강요되거나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때로 책임을 감내하는 것이라고쯤 여겨야 할 것이다. 오롯이 견뎌야 할 외로움이기도 하다. 잠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무수한 일들이 지나간 후에야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두고 살아온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기대에 갇혀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유에는 혹독한 냄새가 배어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너무나 매혹적인, 그러나 여러 부딪힘으로 인해 다시 힘들어지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유는 "파도에다 이야기하는 것"이라던 K시인의 말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새들은 자신이 날아야 한다는 걸 숙명처럼 여겼기 때문에 그토록 자유롭게 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자유는 숙명인 것일까? 이 기막힌 질문은 받아들이자.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웃어 보자 윤이 나도록. 오늘 아침도 천개의 바람이 자유롭게 흩날린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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