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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K와 나는 직장동료로 만났다. 그것은 현대인과 미개인의 조합이었다. K는 스펙도 좋고 능력도 있는데다 결혼자금도 꽤 많이 모아 놓은 걸로 알려져 있었는데 독신이었다. 반면에 나는 멋 모르고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대책도 없이 아이는 넷이나 낳아 동분서주 허둥대는 아줌마였다.
어느 날, 그녀의 생일에 집으로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차려 놓은 음식보다 그릇들이 너무 고급져서 나를 설레게 했다. K의 어머니가 이를 눈치챈 듯,
"결혼준비로 사 둔 건데 시집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욱한 김에 서방질한다고 막 꺼내 쓰는 거랍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딸의 결혼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듣고 있던 내가 참으로 궁금한 질문 하나를 K에게 던졌다.
"그런데 왜 결혼을 안 하죠?"
"딱 한 가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요."
"그게 뭔데요?"
"남자요 ~. 큭 ~ "
퇴직을 하고 한동안 우리는 소식이 없다가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딱 마주쳤다. 세상에나!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 줄이야! 우리는 서로 반가워하면서 손을 마주 잡았다. 퇴직 후 십여 년 만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우리 아파트로 이사왔다고 했다. 후줄근한 나와는 달리 여전히 날씬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뽑아 들었다. 마침 선거철이라 홍보물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그녀의 손이 비어 있었다.
"버렸어요. 식상해서요. 그 나물에 그 밥 ~"
"그렇긴 하지만 투표를 하려면 읽어는 봐야 ~"
"저 투표 안 해요. 한쪽은 나쁜 후보, 한쪽은 못난 후보. 누굴 선택해요?"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결혼준비를 떠올렸다. '딱 한 가지'가 퇴직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나는 묻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그녀가 먼저 내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양손에 나쁜 후보와 못난 후보의 홍보물을 들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했는데 ~.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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